항목 ID | GC019C020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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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호 |
농촌진흥회는 1932년(壬申) 1월 29일 이성호(李誠浩) 외 44명이 벼 한 말(50전)씩 거출하여 종자돈으로 삼아 자력갱생과 저축 증대를 추진하며, 마을에서 혼인이나 상례 시에 반드시 사용하는 차일·교자·상여·남녀의 혼례복 등을 마련하고, 일이 있을 때 불편함이 없도록 상호 협조하며 상호부조(相互扶助)하던 조직이었다. 1954년까지 가입한 회원의 총수는 82명이었다. 1955년 11월 5일에 방풍림계에 흡수 통합되었으며 방풍림계가 그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혼상계(婚喪契)는 1950년 10월 혼상례에 대한 의식이 사회의 변천에 따라 크게 변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상여를 운구할 때 상여메기를 주저하는 등 어려움이 생기자 “공생 공영할 수 있는 협동적 대중 공동 사회생활이라야 된다는 것을 진실로 각성한 오등은 시대조류에 적응한 상호부조로 사생동고” 할 것을 목적으로 이세영 등 46명의 회원으로 조직 운영하였다.
계칙에 해야 할 일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갑·을·병 3개의 특수반으로 나누어 편성하였으며 각 반별 임무는 다음과 같다.
갑반 : 교자 및 혼구 운반, 상여 운구, 음식물 조달
을반 : 제반 기구 준비, 접대 및 안내, 부고 전달 및 산역
병반 : 부고 및 청첩·축문 등 취급, 기타 여러 의례에 대한 문서 취급.
그리고 갑반장에 이동일, 을반장에 이상덕, 병반장에 이부영이 담당하여 각 반별로 동원될 인원을 확정하고 동원부도 만들어 철저를 기하기도 하였다.
혼상문제는 인력과 경제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웃 간에 서로 협조하여 치루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덕으로 마을마다 이에 대비하려는 각종의 계조직이 운영되고 있었다. 계는 촌락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이며 지속적인 비공식적 조직이었다. 이것은 마을사람들의 공동의례나 길흉사 및 생산활동이나 오락 등의 촌락생활을 함께 꾸려가는 데 필요한 상호보완적인 체계이자 상호부조를 위한 협동조직이다. 그러므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하여 구성되고 유지된다. 또한 구성원들 간의 호혜평등을 원칙으로 성립되는 자생적 집단이며 촌락의 인간관계를 토대로 하는 집단이다. 풍덕마을의 혼상계도 필요한 경비나 물품을 모아서 혼상례의 비용을 마련하는 일에서부터 몸부조를 통하여 상복이나 음식을 장만하고 상여를 메거나 매장과 성분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협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민 모두가 언젠가는 치러야 될 문제이므로 이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단결과 협동심을 높이려는 의미에서 1961년 11월 5일 재정관련만을 방풍림계에서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1977년 이후부터는 일체를 통합하여 방풍림계에서 관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촌진흥회의 역대 회장은 초대가 이성호(1932~1940), 2대 이재영(1941~1948), 3대 이근호(1949~1955)였으며, 혼상계는 초대 이세영(1950~1956)이 맡아보다가 그 후 이장이 겸임토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