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E0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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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기 |
마수리 농요는 크게 3부로 이루어진다. 1부가 고사덕담이고 2부가 마수리 농요이며 3부가 여성 노작요이다. 1부 고사덕담을 시작하기 위해서 마수리 농악대가 먼저 농요 대원을 이끌고 입장한다. 이때 꽹과리를 두드리며 농악대를 리드하는 상쇠가 바로 유진형 씨이다. 그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마수리 농악대의 상쇠를 맡고 있다.
그는 타고난 악사이다. 두마치 세마치 군악장단 등은 기본이고 훨씬 더 어려운 장단도 상황에 따라 척척 맞춰나간다. 농악은 서양의 재즈처럼 즉흥성이 강해서 임기응변이 강해야 재미가 있다. 유진형 씨는 음악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어떠한 장소 어떠한 상황에서도 농악을 흥겹고 재미있게 이끌어 간다. 그리고 이때 또 중요한 역할을 사람이 새납을 부는 사람이다. 새납은 타악기 중심인 농악에서 선율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악기다. 그러나 현재 새납을 부는 사람이 없어 중요한 행사 때만 외부로부터 초빙한다고 한다.
유진형 씨는 현재 양봉을 하고 있다. 마수리 농요전수관 뒤쪽 마제 개울에 벌통을 설치해 놓고 개화기에 맞춰 꽃을 찾아다닌다. 집안 살림은 마수리에서 슈퍼를 하는 아내에게 맡기고 벌과 함께 산다. 그런 남편을 아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꽹과리라면 밥도 안 먹고 나가. 자기 없어도 실컨 하니까 가만 있으라구 그래두 아무 소용없어요. 취미가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요, 정말 안 빠져. 그래두 일은 어떻게든 해 놓구 나가니 다행이지”
요즘 유진형 씨는 이 지역에서 농악놀이를 하거나 사물놀이 공연을 할 때 지도를 하기도 하고 심사를 하기도 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상쇠로 꽹과리를 잡기도 한다. 충주 국악협회 상쇠를 10년 넘게 했고, 또 국악협회에서 독립한 충주 민속보존회 회장을 오랫동안 한 경력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바쁘다. 또 농악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마수리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기꺼이 그들을 지도해 준다고 한다.
유진형 씨는 지금도 두드리는 건 자신 있다고 말한다. 1975년 지남기 선생과 인연을 맺어 마수리 농요의 부쇠로 농악을 했고, 지남기 선생이 몸이 불편해진 1995년부터는 상쇠로 마수리 농악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2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마수리 농요보존회장을 맡아 행정적인 면에서도 마수리 농요를 이끌어왔다.
2007년 1월부터 마수리 농요보존회장을 박홍서 씨가 맡아 하면서 이제 유진형 씨는 현장에서 조금은 물러나 있다. 농요 시연 행사가 있을 때 참여하기도 하고 농요보존회 회원들이 꽹과리 지도를 부탁하면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그동안 마수리 농요의 농악을 이끌어온 유진형 씨는 중원 농악의 영원한 상쇠이다. 그의 꽹과리 소리는 지금도 신명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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