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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행해진 사금과 석금 채광. 사금은 충청북도 지역의 여러 곳에서 나고, 사금의 채굴허가 광구 면적은 96만 2,392평에 연장 448정 56칸으로, 충주·음성·연풍·진천·문의·청주·옥천 등 7개 군내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몰래 남굴(濫掘)되는 곳이 많았다. 충주 지역에서는 노은면과 주덕면에서 사금이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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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4월 초부터 약 6개월 동안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전라도 고부의 동학 접주(接主)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교조의 신원과 외세를 물리칠 목적으로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충청북도 지역은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충청북도는 18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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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1910년 8월 한국병합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의 조선 침략이 완성되었다. 일제는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더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1910년 10월부터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인 식민지 지배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정책은 시대에 따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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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가 식민지적 토지소유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행한 사업.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는 조선의 토지에 대해 소유권·가격·지형지모(地形地貌)를 파악하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는 근대적 토지제도와 지세제도를 확립하여 식민 통치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토지조사사업 결과, 토지를 소유했던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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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5월 25일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던 관찰부를 청주시로 이전한 일. 일제는 통감부 설치 이후 보호국 체제의 완결이라 할 지방제도 개정을 통해 식민 통치의 항구적 기반을 세우고자 하였다. 일제가 추진한 지방제도 개정의 골자는 갑오개혁 시기에 마련된 정부-도-군으로 이어지는 지방제도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군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면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여 촌락 사회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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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1일부터 약 1개월 동안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국권을 강탈한 뒤 폭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한민족은 무단 통치 아래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교육과 종교도 탄압받았다. 한편 회사령으로 민족 자본가의 성장이 막히고, 토지 조사 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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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폭압적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서는 군중들이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대열을 이루었으며, 시위의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 나갔다. 당시 충주 일원에서도 거족적인 민족 독립 운동 소식을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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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서는 군중들이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시위의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 나갔다. 당시 신니면의 유일한 사립학교인 용명서당(龍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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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리에서 일어난 학생 시위운동. 1929년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기차 통학을 하던 한국과 일본 중학생 사이의 싸움이 도화선이 되어 광주의 2,000여 명의 학생이 항일 투쟁을 벌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이후 전국적인 학생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전해지자 충주 지역에서는 1930년 2월 7일 대소리 장날에 대소원보통학교 학생 3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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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오가와 제사공장(小川 製絲工場)에서 일어난 동맹 파업 사건. 일제강점기 일본인 자본가의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민족 차별과 노동 착취가 갈수록 심해지자 한국인의 불만은 심화되어 갔다. 1929년 10월 7일 오전 11시경 충청북도 충주읍 오가와[小川] 제사공장에서 일하던 여자 직공 27명은 모두가 늘 교대한 뒤에 먹던 점심을 점심시간이 아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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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충청북도 충주 지역 광산 노동자들이 일으킨 동맹파업. 일제강점기 식민지 자본주의 아래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충주 지역 태창(泰昌)광업소의 노동자들 또한 그들 가운데 일부였다. 1936년 7월 18일 충주군 노은면에 있는 야간광업부 태창광업소 소속 노동자 200여 명이 임금 인상과 대우 개선을 요구 조건하여 동맹파업을 단행하였다. 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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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에서 일어난 면사무소 이전 반대 운동. 1934년 당시 복탄리에 있는 소태면사무소의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새로 짓게 되었다. 이에 양촌리, 야동리, 동막리, 구룡리, 주치리 주민들은 면사무소 개축을 기회로 면사무소가 면 서쪽에 치우쳐 있으므로 야동리 도로변으로 면사무소를 이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면사무소가 있는 복탄리와 덕은리 주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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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일본이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 지역에 설치한 병참기지. 불법적으로 경복궁을 강점한 일본이 이후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청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가흥에 설치한 병참기지이다.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자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대대적인 군대를 파견한 일본군은 1894년 6월 21일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이어 청국(淸國)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6월 23일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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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일제의 사법기관. 조선총독부는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각 지역에 식민지 사법기관을 설립하여 한국인을 통치하였는데, 공주지방법원 충주지청도 그 중 하나로 설립되었다. 1894년 형조가 폐지된 후 법무아문(法務衙門)이 설치되고, 다음 해인 1895년 법무부로 개칭되면서 같은 해 7월 「재판소기구법」이 발포되었다. 충주 지역에 근대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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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립된 최초 금융기관. 농공은행은 1906년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발달을 위해 설립된 은행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지방 금융의 핍박을 우려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 정부 창고를 건설하고 미곡의 담보 대부, 부동산의 담보 대부를 행하였다. 그러나 그 시설이 응급적·과도적인 것에 불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부 자원도 빈약하여 지방 금융을 완화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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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엄정면 목계리에 있었던 금융기관. 목계(牧溪)는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여 육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서울과 중원 지방을 잇는 한강 수로의 내륙항으로서 교역이 활발하여 큰 시장이 형성된 지역이었다. 목계금융조합은 충청북도 엄정면 목계와 인근 지역 농민들에 대한 금융 지원 업무와 지방 청년들을 농촌 진흥에 동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목계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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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무정부주의 단체. 문예운동사는 무정부주의 운동의 실천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인류의 절대자유와 현 국가 제도의 파괴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9년 2월 18일 권오순(權五淳)[29세], 안병규(安秉奎)[26세], 김학원(金學元)[25세], 서상경(徐相庚)[20세], 서정기(徐廷夔)[22세], 정진복(鄭鎭福)[25세], 김현국(金顯國)[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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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독립운동단체. 신간회는 1927년 2월 ‘민족 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의 결성이라는 목적 아래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하여 창립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운동 단체이다. 신간회 충주지회는 조선 민족의 정치적·경제적 해방의 실현, 전민족의 현실적 공동 이익을 위한 투쟁, 모든 기회주의 부인을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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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조선운수주식회사 산하 출장소. 조선운수주식회사 충주출장소는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운송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면서도 창고업, 금융업, 물산수출입과 위탁판매업을 담당하였다. 1929년 8월 31일 조선운수주식회사 충주출장소 소속 마차 인부 30여 명이 파업을 단행하였다. 마차 인부들은 충주읍에 있던 전매국 충주출장소에서 충주역까지 황색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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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 1910년 제정된 조선총독부 관제 중 경제 담당 부서는 탁지부(度支部)였는데, 탁지부 안에는 조세를 담당하는 사세국(司稅局)과 예산을 담당하는 사계국(司計局)이 있었다. 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는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북 지역의 조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2년 4월 1일 대구, 대전, 개성,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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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청년 단체. 1933년 12월 9일 충주에 거주하던 청년 40명이 충주읍 사무실에 모여 체육의 연마, 경제생활 향상, 사회봉사, 상호친목을 목적으로 중앙청년회를 발족시켰다. 이날 중앙청년회 규칙을 제정하고 회장에 이상습(李相習), 부회장에 김흥태(金興泰), 평의원에 변석은(卞錫銀) 외 6인, 간사에 민세기(閔世基) 외 6인, 고문에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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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미곡 통제 조합. 1936년 「미곡자치관리법」에 의해 전국에 미곡통제조합연합회가 설립되었다. 충주를 비롯한 지방 미곡통제조합연합회는 함경북도를 제외한 12도에 설립되었으며, 전체 조합원은 145,567명에 달하였다. 일제가 충주 지방의 미곡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1936년 11월 6일 충북지방미곡통제조합연합회를 설립하였다. 충북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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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과수 생산자들의 동업조합. 충주과물동업조합은 충주 지역에서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등의 과수 생산자들이 상호간 친목 도모와 과수 재배 기술 정보 교환, 과수 공동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41년 7월 30일 충주 지방의 과수 생산자들이 충주과물동업조합을 창립하였다가, 1946년 4월 3일 충주시 성내동 178번지에서 조합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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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에 있었던 수리조합. 충주의 서북쪽 충주천(忠州川)의 오른쪽 기슭에 위치한 탄금대 도로와 제천가도의 중간에 있는 평야 약 70정보의 논을 대가미(大加味)라 하였다. 그곳은 지당으로부터 급수했으나 자연적인 토사의 유입으로 해마다 하상(河床)이 매몰되고, 제방 또한 여러 곳이 무너져 내려 자연히 그 몽리 지역에 용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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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농업 단체. 1926년 3월 21일 충주 지방의 농민들에게 농사개량지도 사업을 권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농민들에게 지역의 특성에 알맞은 작물을 재배하도록 권장했다. 또한 농민에게 자급 비료를 증산하게 하고 농기구를 개량하도록 권유했다. 그밖에도 소작쟁의에 관한 조정 및 중재를 통해 충주 지역 농촌재편성의 업무를 담당했다. 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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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충주군 읍내면에 있었던 금융조합. 충주 지역 농민들에게 농업자금을 제공하여 농업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9년 12월 5일 충주군 읍내면에 설립되었다. 1927년 이완재(李完載)가 조합장으로, 송하각치(松下角治)가 이사로 선출되었으나 1929년 이사가 도엽매남(稻葉梅楠)으로 교체되었다. 그 후 1933년에는 신정무부(新井武夫),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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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언론 단체. 충주독필단은 충주 지역에서 영업 중이던 『조선일보』·『동아일보』·『시대일보』 각 지국들의 권위 발휘와 상호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5년 8월 10일 충주의 『조선일보』·『동아일보』·『시대일보』 각 지국의 기자들은 시천교당(侍天敎堂)에 모여 충주독필단(忠州禿筆團) 발회식을 개최하고 중요 사항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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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행정 자문기관. 조선총독부에서 지방 행정을 원활히 관할하기 위하여 충주면장의 업무 수행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서 충주면협의원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 7월 조선총독부 제령 제13호에 의거해 면제가 제정되었다. 이후 1923년 2월 15일 충주면이 지정면이 됨으로써 충주면협의원회가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동년 5월 21일 충주면사무소에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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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유림 청년 단체. 1926년 11월 11일 충주 지역 유림들이 지역 청소년들에게 유교 문화와 사상, 예절을 전파하기 위해 충주명륜청년회를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회원은 3명으로 구성되었다. 1929년 회원은 5명으로 증가하였으며, 회장은 최돌선(崔突善)이 맡았다. 1928년 11월 15일 충주명륜청년회는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야학 활동을 전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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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유림 단체. 지역 유림들이 유교 문화와 사상, 예절의 보존과 더불어 지역의 효자·절부(節婦)를 표창하기 위해 1921년 설립하였다. 1925년 11월 1일 충주명륜당에서 충주군 내의 효자와 절부를 기리기 위한 표창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표창자로는 금가면 절부 유복남(劉卜男), 산척면 열부(烈婦) 엄지북(嚴芝北), 엄정면 효자 유지호(柳志浩), 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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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사회단체. 충주공립보통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사회적 지원을 목적으로 1926년 3월 3일 설립되었으며, 당시 회원은 3명으로 구성되었다. 1929년 후원회장은 윤정구(尹政求)가 맡고 있었다. 1928년 충주공립보통학교 후원회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추계운동회를 주최하였으며, 교직원을 위로하기 위해 일반 학부형들과 함께 위로연을 베풀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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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문화 단체. 충주 지역 유지들이 지역의 문화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한 대표적인 문화단체이다. 1920년 5월 15일 충주 지역 청년 유지 10여 명이 충주공립보통학교에서 충주삼우구락부 설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설립 당시 설립비와 유지비로 기부된 금액이 1천여 원에 달할 정도로 지역 유지들의 관심이 높았다. 동년 6월 5일 충주공립보통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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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조선인 상인 단체. 충주 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 상인들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1924년 6월 8일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회원은 3명으로 구성되었고, 회장에는 윤정구(尹政求)가 선임되었다. 1928년 충주상무회는 철도인 충주선(현 충북선)이 충주까지 연장되도록 하는 데 기여하였다. 1930년 5월 충주상무회는 제1회 상점원 근속자 표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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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던 수리조합.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 일부 지역의 관개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2년 4월 1일 설립 인가를 받고, 동년 9월 13일부터 충주군 충주면 지역에 관개 시설 공사를 착공하여 1924년 3월 31일 준공하였다. 최초 몽리 면적은 394정보였으나 1931년 기록에는 510정보로 증가하였으며, 이 면적은 그 이후에도 지속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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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던 유학생 친목 단체. 충주 지역 유학생들의 상호 친목과 지역 청년들과의 교류를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9년 8월 18일 충주유학생회 주최, 동아일보 충주지국 후원으로 충주공립보통학교 졸업생팀과 유학생팀이 충주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대회를 개최하였다. 경기 결과 30대 14로 졸업생팀이 우승하였는데, 당시 야구대회를 구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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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충주읍 행정심의 기관. 읍규칙의 설치·개폐, 세출입 예산의 심의, 사무 검열 등 충주읍의 행정 업무의 심의를 담당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31년 4월 1일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면서 기존의 충주면협의원회를 대체하는 충주읍회가 설치되었다. 충주읍회의원은 직접 선거로 선출되었으며,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자격 요건은 읍세 5원 이상을 납부한 남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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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던 사회 단체. 1932년 만주 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를 구제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32년 2월 20일에서 2월 21일 양일간 만주동포 구제자금 모금을 목적으로 충주 중앙극장에서 소인극대회를 개최하였다. 입장료는 20전이었으며, 후원은 조선일보 충주지국과 동아일보 충주지국에서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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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전기 업체. 전등 전기의 공급, 기계·기구의 매매, 대부, 수선 및 그에 따른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6년 7월 27일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 충주리에 충주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개업 당시 전기 공급 호수는 400호였으며, 점등 수는 천 여 개 정도였다. 1927년 충주전기주식회사의 사장은 고곡수일(古谷脩一), 이사는 수야미길(水野彌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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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주조 업체. 조선 술의 제조와 판매 및 그에 따르는 업무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38년 3월 12일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읍에 충주주조주식회사가 설립되었으며, 주조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충주세무서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충주주조주식회사는 동년 4월 4일 창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1939년 사장은 궁무보(宮武保)·박용래(朴容來), 이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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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주중학교 설립을 위해서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조직되었던 후원회. 1938년 6월 충주 지역 유지 유석희(劉錫禧) 등 10여 명이 도지사에게 충주중학교 설립을 요청하였을 때 건설비 20만 원을 모금하면 설립을 인가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유지들은 군민대회를 열고 즉석에서 충주중학기성회를 조직하였다. 모금 활동 결과 1939년 4월 기부 총액이 약 12만 원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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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충주 지역 청년들의 상호 친목 도모와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2년 10월 23일 회원 5명으로 구성된 충주청년회가 설립되었다. 1923년 5월 20일 충주군청에서 충주청년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 충주지국이 후원하는 충주청년회 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같은해 5월 22일 충주공립보통학교에서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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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학생 단체. 충주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 도모와 충주 지역민들의 계몽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1925년 서울에서 유학하던 충주 출신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1925년 7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충주 지역 순회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일정은 7월 28일 신니면 용원리, 7월 29일 노은면, 7월 30일 대소원(현 이류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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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헌병 경찰 기관. 충주 지역에서 식민화에 반대하는 한국인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말기 일제의 감독 기관이었던 통감부는 충주 지역에 경비 기관으로 경찰서를 배치하는 것 이외에, 충청북도 천안헌병분대의 일 구역으로 충주헌병분견소를 설치하고 헌병과 보조원을 배치하여 경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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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형평사의 지부. 형평사는 1920~1930년대에 걸쳐 백정들의 실질적 해방을 목적으로 활동한 전국적 조직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백정이라는 신분적 차별이 법률적으로 철폐되었으나 이후에도 실생활에서는 차별이 여전했다. 1922년 일본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수평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3년 4월 25일 진주의 이학찬(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