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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풍산(豊山). 증조부는 김순로(金舜老), 조부는 김길(金吉)이며, 아버지는 고양군수를 지낸 김호(金鎬)이다. 조선 선조 때의 효자로 임진왜란 중이던 1594년(선조 27) 3월 29일 강도 수십 명이 침입하여 아버지를 해치려고 하자 아버지를 구하려고 달려들어 감싸다가 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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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금녕(金寧)이다. 김창기는 부친이 병환 중에 소·대변을 받는 등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또 마을 위해서 부인 추현금 여사와 상의하여 문전옥답을 1969년 설운1리 마을회관 건립 부지 1,090㎡(330평)을 희사하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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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김현문은 부인과 사별한 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가난하여 충북선 철로를 개설할 때 현장에서 날품일을 하였는데, 점심때가 되면 집에 와서 어머니의 점심을 차려드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5년간 병석에 있어 출입이 어려워지자 업고 다니면서 봉양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매일 성묘하였다. 생애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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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박형우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에 순종하고 거역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 있을 때 대소변을 받아냈고, 어머니가 낙상하여 대퇴부 골절상으로 거동이 불편하자 업어서 산천구경을 시켜드리는 등 효행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6년 동안 성묘를 거르지 않았다. 박형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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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실(自實). 정숙공 박안신(朴安信)의 후손이다. 박효인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이 나면 대변을 맛보고 그 상태를 알아 간호했고, 병세가 위독해지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병을 치료했다. 또한 박효인의 처 원씨도 효심이 지극하여 부부가 모두 주위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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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덕호(德浩). 원산군 원황(元滉)의 후손이다. 원덕상은 부모를 봉양함에 효로써 다하고 집안을 다스림에는 법도가 있었으며 형제 간에는 우애가 깊었다. 또한 아들 원용준(元容濬)도 효성이 깊어 주위에서 부자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원덕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이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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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창로(蒼老), 호는 후조헌(後凋軒). 할아버지는 유충건(柳忠健), 아버지는 유시량(柳時亮)이며, 동생은 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 현종 때 정언·지평 등 언관에 종사하였으며, 1674년(숙종 즉위)에 장령을, 1683년(숙종 9)에는 삼척부사를 지냈다. 아버지의 종기가 심하여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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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상지(常之). 학암(鶴巖) 유몽정(柳夢鼎)의 후손이다. 효우(孝友)의 근본이 하늘에 있는 것이니 부모가 하는 일이면 비록 어려운 일 일지라도 기어코 했으며, 싫어하는 일이면 비록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을 얻으니 산신령에게 기도를 드리고 대변을 맛보아 가며 4개월 동안 지성으로 간호했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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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강(子强), 호는 약봉(藥峰). 고려시대 태사(太師) 유차달(柳車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몽정(柳夢鼎)이고, 아들은 사어(司禦) 유시량(柳時亮)이며, 손자는 유송제(柳松齊)·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조선 광해군 때의 효자로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광해군 때 벼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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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전주(全州).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광흥창수(廣興倉守) 이요빈(李堯賓)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릉참봉 이호(李浩)이며 아버지는 장령 이유양(李有養)이며 어머니는 풍산홍씨(豐山洪氏)이다.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여섯 아들 중 각각 장남과 오남으로서 부모에게 효성을 다했다. 이적의 묘소는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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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필보(弼輔), 호는 매헌(梅軒)·봉주(鳳洲). 훈신 석번(碩藩)의 후예이다. 1576년(선조 9) 충주에서 태어난 이성국(李誠國)은 1591년(선조 24) 15세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3년 세 차례나 적진으로 들어가 왜장 사야가[沙也可, 조선이름 김충선(金忠善)]를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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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부(起夫), 호는 충헌(沖軒).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李璆)의 후손이다. 이시진(李時振)은 12세 때에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소변까지 맛보면서 극진히 간호했다. 어머니가 병이 나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또한 꿀을 먹고 싶다고 하는데 때마침 엄동설한이라 구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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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연안(延安). 이시걸의 자는 휴재(休哉). 이시희와 이시걸은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4세손이다. 이시희와 이시걸은 아버지의 중환에 잉어가 약이 된다고 하여 구하려고 했지만, 겨울철이라 못이 얼어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형제가 얼음 위에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자 잉어가 솟아나왔다. 어느 땐가 약을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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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이자 정치가. 임정환은 1927년 충청북도 충주시 풍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묘를 했으며, 술과 담배를 끊어 아버지와 조부모 산소에 석물을 세웠다. 1960년에 제3대 충주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었고,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제5대와 제7대 충주시 행정자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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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계영(繼榮).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임황(林篁)이고, 형으로는 병마절도사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과 임승업(林承業)이 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형인 임승업이 맹산 수령으로서 출전한 뒤 형 대신 노모를 봉양하다가 이듬해 모친상을 당하여 밤낮으로 슬프게 통곡하였다. 이때 청나라 군사가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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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어버이가 한겨울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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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임천(林川). 조재의의 자는 치도(致道). 신수재(愼守齋) 조찬(趙璨)의 후손으로 조재의가 형이고 조재미가 동생이다. 조재의와 조재미 형제는 효성이 지극하여 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했다. 매일같이 고기를 잡아 아버지 상에 올렸고, 고기를 잡다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지켜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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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양(驪陽). 8세 때 아버지가 냇물을 건너다 물이 불어나서 떠내려가는데 이것을 본 진후는 대성통곡하며 자기도 아버지를 따라 죽겠다고 냇물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물결이 잔잔해져 아버지를 구하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탄했다. 또한 13세 때에는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으며 또한 약을 올리며 대변까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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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여(養汝). 모당 홍이상(洪履祥)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첨지중추부사 홍만최(洪萬最), 조부는 홍문관교리 홍중현(洪重鉉), 아버지는 홍인보(洪寅輔)이고, 어머니는 수원최씨이다. 홍차기(洪此奇)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홍인보는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수원최씨는 홍차기가 열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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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효부. 김성배 처 전주이씨는 군수 이삼응의 4녀로 태어나서 14세에 김성배와 혼인하였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9년 동안 딸 셋을 낳아 기르다가 남편이 3년간 병석에 있을 때 정성껏 간호했고, 남편이 죽자 같이 죽으려 했으나 사람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5년간 병석에 계실 때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서 마을에서 칭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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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원주(原州). 효자 박효인(朴孝仁)의 처(妻)이다. 박효인은 조선 중기의 효자로 본관은 상산(常山). 자는 자실(自實)이며, 정숙공(貞肅公) 박안신(朴安信)의 후손이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병환이 낮기를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했으며, 겨울에 붉은 대추를 얻는 이상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박효인과 박효인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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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문화(文化). 남편은 송순(宋淳)이다. 송순 처 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편을 청나라 병사에게 잃고 혼자 몸이 되었을 때 네 살 난 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면서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했다. 송순 처 문화유씨의 정절과 부덕이 조정에 알려져 1640년(인조 18)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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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 본관 전주(全州). 광평대군의 후손으로 남편은 심필정(沈弼鼎)이다. 심필정의 처 전주이씨는 18세에 심필정과 혼인한 이후 시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하고 남편에게도 지극 정성을 다했다. 남편이 홍역으로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남편의 쾌유를 기원했으나 끝내 남편이 죽고 말았다. 슬픔에 복받쳐 식음을 전폐하면서 죽으려 했으나 주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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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부. 본관 풍산(豊山). 아버지는 성균관전적을 지낸 홍봉상(洪鳳祥)이며, 남편은 사헌부장령을 지낸 이유양(李有養)이고, 아들은 효자 이속(李續)이다. 이유양의 처 풍산홍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랐다. 시집을 간 뒤에도 어머니 권씨가 병을 얻게 되자 친정으로 돌아와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고 간호하여 병을 낫게 했다. 다시 시가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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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부. 이철재의 처 경주김씨는 본명이 김성례(金聖禮)이며, 18세에 이철재와 혼인하여 2남을 두었다. 26세 때 남편을 잃었지만 조금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았으며, 낮에는 논밭에서 품을 팔고 밤에는 길쌈하여 가정을 꾸려나갔다. 효성이 지극하여 술을 좋아하시는 시아버지를 위해 항상 술을 마련하였으며, 시아버지가 병이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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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문화(文化). 남편은 통덕랑에 오른 이학보(李學普)이다. 이학보의 처 문화유씨는 남편이 병석에 눕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는 등 정성으로 간병하였다. 그러나 지극한 간병도 효험이 없이 48세로 남편 이학보가 별세했다. 이학보의 처 문화유씨는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소복차림의 정좌한 자세로 세상을 떠나니 향년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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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전주(全州). 남편은 임경업(林慶業)이다. 임경업의 처 전주이씨는 임경업이 명나라와의 내통 사실이 발각되어 청나라로 압송 중에 탈출한 사건에 연좌되어 가족과 함께 청나라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갔다. 청나라에서 고초가 날로 심해지던 중인 1644년 9월 “나의 남편은 대명(大明)의 충신이고 나는 오로지 충신의 아내임을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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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광주(廣州). 임호현(林浩鉉)의 처 광주안씨는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으나 효행비문에 의하면 양이삼성(養以三省)·원자백행(源自百行)·언필화완(言必和婉)·심근성경(心根誠敬)의 효행이 있었다고 한다.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효행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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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부. 본관은 전주(全州). 남편은 유생 정수동이다. 정수동 처 전주이씨의 구체적 생애에 관해서는 알 수 없으나 효부로서 칭송이 자자했다고 전해진다. 1743년(영조 19) 전주이씨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명해지고 정려가 건립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맹동에 있는 정려는 남향으로 배치되었고, 정면 1칸, 측면 1칸의 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