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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015
한자 李仲燮-西歸浦-幻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은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1년 1월 - 이중섭 서귀포에서 피난생활 시작
거주지 이중섭거주지 - 서귀포시 서귀포동 512-1 지도보기
미술관 이중섭미술관 - 서귀포시 이중섭거리 87[서귀동 532-1]지도보기

[정의]

1950년 이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가 이중섭과 그의 작품들.

[개설]

이중섭(李仲燮)[1916-1956]은 한국전쟁 발발 후 제주도 서귀포 지역에 피난와 거주하면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바닷가의 아이들」·「서귀포의 환상」 등의 대표작을 남긴 화가이다. 1950년 12월 10일 이중섭은 그때까지 그린 작품들을, 함께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께 맡기면서 “이 작품을 저처럼 생각하시고 잘 보관하시라” 하고는 채 완성하지 못한 풍경화 한 점을 들고 고향을 떠났다.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원산항에서 화물선을 타고 사흘 만에 부산에 도착했고, 이중섭 가족은 부산에서 한 달 정도 머물다가 조카 이영진이 있는 제주도로 향했다.

[피난지 서귀포에 도착하다]

이중섭이 서귀포(西歸浦)에 온 것은 1951년 1월경이었다. LST를 타고 화순항에 내려 서귀포를 향해 걷는 동안 눈발이 세차게 몰아칠 때면 농가의 소외양간에서 눈보라를 피했다. 이런 피난길의 생생한 기억은 이후 「피난민과 첫눈」이라는 작품으로 되살아났다.

이중섭 가족이 서귀포에 도착한 곳은 알자리 동산으로,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이중섭 가족을 맞이한 사람은 이 마을 반장 송태주와 김순복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이중섭 가족에게 방을 하나 내주었다. 그들도 식구가 많아 흡족치 못한 살림에 신세를 지게 된 이중섭 가족은 미안할 따름이었다. 1.4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이중섭 가족은 숨소리를 느끼며 꼭 끼여 잠을 자야만 했다. 그래도 이중섭 가족은 거주지 왼편으로 섶섬이 보이고, 옆으로 문섬새섬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서 겨울 바람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서귀포에 도착한 이중섭을 맨 처음 찾아온 사람은 조카 이영진이었다. 이영진이 가끔 군용 통조림 등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식량은 늘 부족했다. 이중섭 가족은 끼니로 채소를 캐 오거나 게를 잡아 반찬으로 삼았다. 게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 게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게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이중섭의 말을 새겨보면, 당시의 상황이 눈에 선하다. 당시 피난민들은 얼마 안 되는 배급 쌀과 고구마로 연명하고 있었다.

이중섭이 서귀포에 있을 때 이웃에는 서귀포 화가 고성진[1920년생]이 살고 있었다. 고성진의 집은 이중섭이 사는 곳에서 약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의 집이 바닷가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이중섭은 자주 그 집 앞을 지나갔다. 어떤 때는 스케치 북을 들거나, 때로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중섭은 고성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고성진은 이중섭이 북한에서 왔고, 북조선에서 예술위원장을 지냈다는 소문 때문에 꺼림칙하여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고성진을 볼 때마다 우호적이었다. 이중섭은 고성진의 스크랩북을 빌려갔다가 자기 부인을 통해 되돌려 주기도 했다.

[이웃 주민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다]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넉 점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한국전쟁[6·25] 때 전사한 이웃 주민 세 사람과 집주인 송태주이다. 이중섭은 원산에 있을 때 어머니가 그려 달라고 해도 다음으로 미루었을 만큼 초상화 그리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그는 이웃 주민과 집 주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마당에 쌓아 놓은 땔감 위에 전쟁터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작은 사진을 올려 놓고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이웃에서는 답례로 고구마와 보리쌀 등 식량을 나눠 주었다. 이웃과 잦은 교류는 없었지만, 이웃에 대한 이중섭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집 주인 송태주에게는 고마움의 표시로 마루에 앉아 모델이 되게 한 다음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이중섭, ‘서귀포의 환상’을 남기다]

원산(元山)에서 소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몰린 적이 있는 이중섭은 서귀포에서도 남의 소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몰린 적이 있었다. 이중섭의 소를 소재로 한 작품들 중 현재 남아 있는 작품들은 1953년 이후 통영에서 그려졌지만, 서귀포 생활에서 얻은 소의 이미지가 습작을 통해 마침내 통영에서 유화로 완성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중섭이 서귀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토록 힘차고 아름다운 소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서귀포에서 받았던 순수한 소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중섭의 생애에서 서귀포 생활은 온 가족이 반찬 없이 밥을 먹고, 고구마나 게를 삶아 끼니를 때울지언정 웃으면서 함께 살 수 있었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1997년 이중섭 거주지 복원 당시 서귀포를 방문했던 이중섭의 부인 이남덕 여사도 서귀포 시절을 “시댁 식구들을 벗어나 달랑 네 식구만 남고 보니 소꿉장난처럼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남덕 여사는 이때 집주인 김순복 할머니에게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감사의 인사를 했다고 한다.

예술가에게 시간과 공간은 예술 창작의 두 축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중섭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된다. 시간은 의식을 변화시키고, 공간은 작품의 무한한 소재를 제공해 준다. 이중섭에게 서귀포라는 장소가 등장하는 물고기와 게, 벌거벗은 아이들은 바로 서귀포라는 공간에서 잉태된 것들이다. 이 소재들은 섬에서 보낸 고뇌와 그리움,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렬한 동경에서 건져 올린 예술적 형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서귀포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서귀포의 환상」은 작품의 주제나 소재에서 ‘아름다운 서귀포’라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 있다.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서의 서귀포는 ‘귤’과 ‘섬’이 중심 소재가 돼 작품에 반영된다. 겨울인 데도 푸른 바다 때문에 더욱 노랗게 보이는 감귤에서, 이중섭은 따뜻한 평화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운 제주도 생활]

이중섭의 서귀포 시대는 불과 11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서귀포를 주제로 한 좋은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가족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섬·게·물고기·아이들 등의 소재는 이후 이중섭의 유화나 은지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그의 작품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됐다.

한 편의 시와 같이 아름다운 가족도(家族圖)라 할 수 있는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제주도를 떠나서 그린 그림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과 함께 있었던 제주도 시절을 그리워하며 기억에 의존해서 그렸다. 게를 모티프로 하여 가족의 단란했던 한 때를 엮어 내는 이 그림에서도 역시 이중섭 특유의 해학성과 강한 상징성을 느낄 수 있다.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그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서귀포 시절과 관련한 이중섭의 그림들은 따뜻하고, 해학적이며, 즐겁고, 포근한 사랑으로 표현됐다. 이중섭이 가족의 사랑을 더욱 심도 있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마지막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서귀포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게의 어울림에 빗대어 표현한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가족이야말로 지상의 아름다운 최소한의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게와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서 풍부한 해학성으로 다가서는 이 작품에서는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는 이중섭의 간절한 염원을 엿볼 수 있다.

[이중섭, 그를 기리며]

서귀포시는 1997년 서귀포에 이중섭거리[360m]를 선포하고, 이중섭이 살았던 집을 매입하여 복원했다. 1999년 문화관광부가 주관하는 이달의 문화 인물에 이중섭이 선정되어,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그의 특별전이 마련됐다.

2002년 서귀포 이중섭 거주지 부근에 이중섭전시관이 개관됐다. 2003년 이중섭전시관은 가나아트갤러리로부터 예순여섯 점[이중섭 화가의 원화 작품 여덟 점을 포함]을 기증받아 2종미술관으로 등록됐다. 2004년 갤러리현대로부터 54점[이중섭 화가의 원화 작품 한 점을 포함]을 기증받아 1종미술관으로 등록됐다.

[참고문헌]
  • 이중섭기념사업회, 『대향 이중섭』(한국문학사, 1979)
  • 최석태, 『이중섭 평전』(돌베개, 2000)
  • 오광수, 『이중섭』(시공아트, 2008)
  • 전은자, 「이중섭의 서귀포 시대」(『탐라문화』39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11)
  • 인터뷰(김순복, 여, 89세, 2009. 4. 9.)
  • 인터뷰(고성진, 남, 90세, 2010. 3. 27.)
  • 인터뷰(송상진, 남, 71세, 2010. 9. 4.)
  • 인터뷰(송덕남, 남, 65세, 2011. 7. 2.)
  • 인터뷰(박정석, 남, 67세, 2011. 8. 10.)
  • 인터뷰(이인보, 남, 61세, 2011.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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