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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457
한자 旌義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임승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16년(태종 16)연표보기 - 정의현 설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09년연표보기 - 제주목에 방[면]·리제 실시
관할 지역 정의현 - 서귀읍을 포함하는 남제주군 동부 지역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구 남제주군) 동부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옛 행정 구역.

[개설]

1273년(원종 14년) 원의 직할령이 되었던 탐라가 고려에 환속되어 1년이 지난 1295년(충렬왕 21년)에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이와 더불어 1300년(충렬왕 26년)에 이루어진 탐라의 행정단위 개편 즉, 탐라 지역의 행정단위가 분화․확대 개편된 사실은 당시 탐라 사회의 규모가 이전보다 확대된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로써 1300년에 이르러서 제주목에 속했던 촌 가운데서 14개 촌이 동·서 방향으로 나뉘어, 각각의 군·현으로 개편되어 현존하는 마을의 틀과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1416년(태종 16년)에 제주도는 고려 시대의 행정조직이었던 동·서도현(東·西道縣) 제도를 폐지하고, 3읍 행정조직을 도입, 대폭적인 개편을 단행하였다. 당시 제주목사 오식(吳湜)의 건의에 의해서 정비된 행정구역을 보면 한라산 동서로 뻗은 분수령을 경계로 북반면을 제주목으로 하고, 남반면은 이를 다시 동서로 양분하여 동쪽을 정의현, 서쪽을 대정현으로 하였다. 이 3읍 행정조직은 조선 시대 말까지 이어졌고, 이에 따른 하부조직의 개편은 1609년(광해군 1년)에 이르러 3읍 8면이 되었다. 이 하부조직은 조선 시대 후기에 제주목 우면이 신우면과 구우면으로 분면되는 등 부분적 개정이 있었으나, 고종 때까지는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이후 1864년(고종 원년) 8월 30일 조정에서는 제주목의 정의현대정현 2개 현을 군으로 승격시키면서, 제주목사의 관할에서 분리시켜 직접 전라도 관찰사의 관할 아래 두게 되었다. 하지만 두 현이 제주목사의 지휘권에서 벗어난 결과 점차 체통이 문란해지고, 과폐(科弊)가 일어나는 등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1880년(고종 17년) 1월 27일 다시 예전대로 정의현·대정현으로 환원시켜 제주목사의 관할 아래 귀속시켰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이 개창된 후, 조선 정부는 제주에 대한 강한 통치력을 행사하기 위해 여러 시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1392년(태조 원년)에 제주향교를 설치하고, 1394년(태조 3년)에는 우마적을 작성하는 한편, 1404년(태종 4년)에는 노비적 작성, 1408년(태종 8년)에는 제주의 공부(貢賦)를 정하는 등 제주 지방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에서도 조선 정부는 무엇보다도 대대적인 행정 개편을 통해 제주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이에 중앙집권적 집권체제를 강화해 나가고 있던 조선 왕조는 그 일환으로 제주에 대한 행정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1416년(태종 16년)에 삼읍 체제 즉,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을 형성하게 되었다. 당시 도안무사 오식과 전판관 장합의 주청에 의해 한라산 분수령을 경계로, 산북을 제주목으로 하여 목사를 두고 산남을 양분하여 동쪽은 정의현, 서쪽은 대정현으로 나누어 각각 현감을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제주 지역은 1목 2현의 지방 행정 체제가 되었다. 지금의 서귀포시 지역 중 시(市) 승격 이전의 서귀읍 지역은 정의현에, 중문면 지역은 대정현에 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1목 2현 제도는 1895년 갑오개혁때까지 존속하여 당시 조선 시대 제주 지방 행정구역의 기본틀이 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정의현의 사방 경계로는 동쪽으로 제주목(濟州牧)과의 경계까지 26리이고, 북쪽으로 제주목 경계까지 20리이며, 서쪽으로는 대정현과의 경계까지 37리, 남쪽으로 바다까지 7리였다고 한다.

[내용]

조선 정부의 8도의 하위체제였던 군현제에 대한 정비는 1416년(태종 16년)에 제주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단락되었다. 8도 체제가 성립되기 이전, 제주는 여말선초 계수관(界守官)[전국의 교통로나 큰 고을을 중심으로 주위의 작은 고을을 통할하는 통치방식] 지역의 하나인 나주목(羅州牧) 관할 하에 놓여 있었다. 계수관 지역인 전주목과 나주목의 첫 자를 따서 8도의 하나로 전라도가 정비되면서 제주는 전라도에 예속되었고, 당시 제주의 행정구역은 제주목 한 읍으로 되어 있었다.

이에 1416년(태종 16년) 제주목사 겸 도안무사 오식(吳湜)이 제주의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해 줄 것을 중앙정부에 요구하였다. 오식은 제주도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이유로 제주에는 백성이 많아 소송이 끊이지 않으며, 한라산 북쪽 한 곳에만 관아가 있어 산남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관아를 왕래하는 데 커다란 불편이 발생하고 있고, 심지어 농사철에 관아를 왕래하게 되면 2~3일이 소요되어 농사시기를 잃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제주목사의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을 틈타 산남에 거주하는 토착 세력들이 주민들에 대한 불법적인 약탈을 종종 일삼으므로 이러한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제주의 행정구역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태종은 종래의 제주목을 제주목·정의현·대정현 세 고을로 나누고, 여기에 17개의 속현(屬縣)을 모두 소속시키도록 하였다. 이로써 제주의 행정구역은 한 고을에서 세 개의 고을로 개편되어 삼읍체제(三邑體制)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삼읍체제는 한말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으나, 1914년에 하나로 통합될 때까지 500여 년간이나 유지되었다.

삼읍의 행정구역은 일반적으로 제주목은 동쪽 종달에서 서쪽 두모에 이르는 한라산 북쪽 일대였다. 정의현은 시흥에서 법환에 이르는 제주의 동남부 일대이며, 대정현은 강정에서 고산에 이르는 제주의 서남부 일대이다. 시기에 따라 삼읍의 경계 및 행정구역의 범위에 다소 변동이 있어, 제주목 종달이 정의현, 정의현 법환이 대정현에 소속되었던 경우도 있었다.

[변천]

1416년(태종 16년)에 행정구획을 개편하여 정의현을 설치할 당시, 제주목은 대촌현을 본읍으로 삼고, 신촌현·함덕현·김녕현·귀일현·고내현·애월현·곽지현·귀덕현·명월현을 소속시켰으며, 정의현정의현을 본읍으로 삼고 토산현·호아현·홍로현 3현을, 대정현대정현을 본읍으로 삼고 예래현·차귀현 2현을 각각 소속시켰다. 그리고 정의현 설치와 더불어 지금의 성산읍 고성리에 정의현성을 쌓았으나, 고성리에 있었던 정의현성의 경우 그 땅이 우도(牛島)에 가까워서 새벽과 밤에 고각(鼓角) 소리가 들리고 큰 바람이 여러 번 불어서 곡식이 흉년들었을 뿐만 아니라 왜적이 번갈아 침입하여 노략질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1422년(세종 4년) 정의현성을 진사리(晉舍里)[지금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옮겨 쌓았다.

이후 1864년(고종 원년) 정의현은 정의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880년(고종 17년) 1월 27일 다시 현으로 환원되기에 이른다. 1895년(고종 32년)의 을미개혁 당시에는 지방관제의 개혁에 따라 전국 23부의 하나로 제주부가 설치되어 관찰사가 파견되자, 제주·대정과 함께 정의현은 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에 정의군은 대정군과 함께 군이 폐지됨에 따라 제주군에 통합되었다. 당시 제주군에 통합된 13면 중에 정의현 지역의 면은 정의면·동중면·서중면·우면으로 4면이었다. 그 후 1935년 4월 1일 행정구역 명칭변경에 따라 정의면은 성산면, 동중면은 표선면, 서중면은 남원면, 우면은 서귀면으로 각각 변경되었다. 이후 1946년 제주도의 설치와 함께 구 대정면과 정의면 지역이 남제주군군으로 독립하였다가 2006년에 서귀포시로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1.23 내용 수정 수정원고로 내용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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