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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08
한자 大靜郡古誌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문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서울대 규장각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
저자 대정군
표제 대정군 읍지

[정의]

1899년(광무 3) 대정군에서 작성한 대정군 읍지.

[개설]

1899년(광무 3) 전국 읍지 상송령에 따라 전라도 대정군에서 작성한 읍지이다. 같은 때에 편찬된 『제주(군)읍지(濟州(郡)邑誌)』[규 10797]의 내제(內題)에 “광무 3년 5월 일 읍지” 라고 되어 있어 『대정군고지』도 이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편찬/간행 경위]

갑오개혁과 광무개혁기(1894~1896)의 지방행정제도의 개편으로 말미암아, 종래의 목부군현(牧府郡縣)은 군(郡)으로 단일화 된다. 대정현은 갑오개혁 때 제주부 관할의 군(郡)으로 되었다가, 광무개혁 때 도제(道制)가 부활하자 전라남도 대정군으로 개편된다. 따라서 『대정군고지』는 당시 변화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려는 중앙의 의도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광무 연간에 편찬된 읍지는 30일 이내에 작성해 올려야 했기 때문에 이전의 읍지를 요약 정서하는데 그친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방의 개편된 행정등급, 새로운 관리조직, 봉급 등의 항목만이 별도로 새롭게 작성된 것도 많다.

[서지적 상황]

1책 7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27.7cm×17.9cm이다. 앞장 첫머리에 「대정군지도(大靜郡地圖)」가 부착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규10799]되어 있다. 한편 이와 동일한 내용을 가진 『호남읍지(湖南邑誌)』[규 12181] 제10책의『대정군고지』가 있으며,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한 『여지도서』의 보유편(전라도)에도 실려있다.

[구성/내용]

목차는 지도(地圖)·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방리(坊里)·도로(道路)·형승(形勝)·성곽(城郭)·관직(官職)·산천(山川)·성씨(姓氏)·풍속(風俗)·능침(陵寢)·단묘(壇廟)·공해(公廨)·학교(學校)·제언(堤堰)·창고(倉庫)·과원(果園)·물산(物産)·교량(橋梁)·역(驛)·원(院)·목장(牧場)·관애(關阨)·봉수(烽燧)·도서(島嶼)·포구(浦口)·누(樓)·사찰(寺刹)·고적(古蹟)·진보(鎭堡)·인물(人物)·한전(旱田)·수전(水田)·진공(進貢)·조적(糶糴)·전세(田稅)·전결(田結)·균세(均稅)·관름(官廩)·요역(徭役)·군병(軍兵)·책판(冊板)·공장(工匠)·노비(奴婢)·의국(醫局)·불우(佛宇) 순으로 되어 있다.

제주군과 달리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시읍지(時邑誌) 항목이 없으며, 정조대 읍지인 『제주읍지(濟州邑誌)』(1780~1789) 소재 「대정현지」를 전사(轉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성 당시 변화된 내용을 각 항목에 기록해 두어 참고가 된다.

방리 조에 ‘면이 2개에 리가 22개였는데, 지금은 면이 3개에 리가 35개이다’라고 되어 있어 『제주읍지』 소재 「대정현지」의 내용을 추가 보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관직 조에 ‘현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군수이다’, 진공 조에 ‘진공으로 바치던 말을 돈으로 대신 한다. 갑오년[갑오개혁]부터 비롯되었다[歲貢黑牛 貢馬則代錢 甲午爲始], 관름 조에 ’지금은 월급으로 준다[今爲月俸]‘, 전결 조에’ 관에서 백미로 납부했었는데 지금은 돈으로 대신 바친다[白米 官納今則代錢]‘ 라고 기록되어 있어 갑오개혁 이후의 변화상을 알 수 있다. 또 『제주대정정의읍지(濟州大靜旌義邑誌)』 역원(驛院)조에 중문원(仲文院)이 ‘현(縣) 동쪽 35리에 있는 점소(點所)’라고 되어 있는데 『대정군고지』에서는 이것을 원(院)조에 간략하게 명칭만 적고, 새로 이왕원(利往院)을 추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정군고지』는 갑오개혁과 광무개혁기 서귀포시대정 지역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2.03 내용 수정 내용 및 참고문헌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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