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86
한자 環海長城
이칭/별칭 고장성,장성,성담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270년(고려 원종 11)연표보기 - 환해장성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45년(헌종 11)연표보기 - 환해장성 증축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1월 7일연표보기 - 환해장성 제주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1533-1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3동 2622-1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1957-1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393-3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687-2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102-2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서귀포시 온평리 지도보기
현 소재지 환해산성 - 서귀포시 신산리 지도보기
성격 방어유적|성|석성
양식 허튼층쌓기
관련 인물 삼별초|권직
크기(높이) 2m 내외
길이(둘레) 120㎞ 내외
소유자 제주특별자치도
관리자 제주특별자치도|제주시|서귀포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제주도 기념물 제49호[1998년 1월 7일 지정]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전체 해안에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바닷가를 돌아가며 돌담으로 쌓았던 성.

[개설]

환해장성은 일명 ‘고장성(古長城)’·‘장성(長城)’이라고도 하며 해안을 전체적으로 둘러친 3백리 장성이다. 김상헌『남사록(南槎錄)』에는 “바닷가 일대에는 돌로 성을 쌓았는데, 잇따라 이어지며 끊어지지 아니한다. 섬을 돌아가며 다 그러하다. 이것은 탐라 때 쌓은 만리장성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건립 경위]

제주 환해장성은1270년(고려 원종 11년) 고려 조정이 삼별초가 진도에서 탐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영암부사 김수와 장군 고여림을 보내 축성하였다. 그후 조선시대에 와서 3성9진 25봉수 38연대로 방어 시설을 정비하면서 다시 축성되었다.

환해장성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도 왜구의 잦은 침범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증축되었으며, 1845년(헌종 11)에는 권직 제주목사가 제주도민을 다수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환해장성을 증축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환해장성 중 일부는 이양선이 출범하는 19세기 중반 이후에 보수, 증축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아직도 환해장성의 흔적이 제주도 내 19개 리(里) 해안가 지대에서 발견된다. 특히, 온평리 해안가의 환해장성은 대략 2㎞에 걸쳐 흔적이 남아있다. 이는 마을 주민들이 ‘성담’이라 일컫고 있거니와, 잔존의 환해장성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

제주도 전역 해안선을 따라 자연석으로 축조되어진 환해장성은 현무암의 자연석을 적당한 크기로 분류해 쌓아놓았다. 이에 해안가 밭이나 경계구분의 돌담, 혹은 바닷물 범람 방지의 돌담 등과 식별이 어려운 경우가 없지 않다. 잔존 높이는 대략 2~2.5m 안팎이나, 함덕리 환해장성처럼 최고 4m의 경우도 있다. 형태는 성 밖은 경사지고 성안은 높은 것, 또는 성 밖은 경사지고 성안은 평탄 한 것 등 다양한 편이다.

[현황]

1998년 1월 7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지정된 환해장성은 화북동[곤흘동 140m, 별도 620m]·삼양동[280m]·애월리[362m]·북촌리[263m]·동복리[150m]·행원리[310m]·한동리[290m]·온평리[2,120m]·신산리[600m] 환해장성이다. 이 중 서귀포시에 있는 것은 온평신산이다.

[의의와 평가]

제주 환해장성은 제주의 방어시설인 3성 9진 25봉수 38연대와 더불어 왜구의 침범을 방어했던 역사적 기념물로서 그 보존 의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