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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92
한자 水山鎭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시로 9[수산리 580]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임승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439년(세종 21)연표보기 - 수산진성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0월 5일연표보기 - 수산진성 제주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
현 소재지 수산진성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시로 9 지도보기
성격 진성|방어유적
양식 정방형 형태
크기(높이) 3.5~5.3m
둘레 544m[일부 저서에는 489m로 추정함]
소유자 제주도교육청
관리자 수산초등학교
문화재 지정 번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2호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

[개설]

수산진성은 조선 시대의 관방 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관방 시설은 험준한 곳에 시설을 만들어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제주의 관방 시설은 대부분 왜구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3개 읍성 및 9개 진성, 25개소 봉수와 38개소 연대가 있었다.

1434년(세종 16) 정의현에 2개의 진(鎭)을 세울 때 좌진(左鎭)은 수산에, 우진(右鎭)은 서귀에 세웠다. 이 진을 방호소(防護所)라고도 불렀고, 그 우두머리를 보통 조방장(助防將)이라 칭하였다.

[건립 경위]

수산진성은 9개 진성 가운데 하나로, 우도 부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할 목적으로 1439년(세종 21)경 지금의 성산읍 수산리 580번지 일대에 차귀진성과 함께 가장 먼저 축조되었다. 즉, 당시 수산 지역은 인근의 우도에 이미 방호소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성곽이 따로 없어 효율적으로 방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축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주 목사 이경록은 성산을 천연의 요새로 여기고 1597년(선조 30)에 방호소를 성산일출봉 밑에 축성한 성산성으로 이전함으로써 잠시 폐성되었다. 그러나 2년 후인 1599년(선조 32)에 제주 목사 성윤문이 성산의 진을 없애고, 다시 수산 지역으로 진을 환원하였다.

[위치]

수산진성은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580번지 일대 해발 50~57m의 완만한 경사면의 북고남저(北高南低)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제주의 다른 진성과 비교해 볼 때, 해안에 나타나는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성으로 보기에는 그 위치가 너무 내륙으로 치우쳐 있다는 견해도 있다.

[형태]

수산진성이 축성될 당시 성의 둘레는 1,164척[352.72m], 높이는 16척[4.84m]이었다. 현재 수산진성의 성벽이 수산 초등학교를 감싸는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데, 이 성벽의 원형 보존 상태는 여타의 진성에 비해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약 489m에 달하는 성 둘레의 추정치는 규모 면에서도 9개 진성 가운데 명월진성·별방진성·차귀진성에 이어 네번째에 해당되고 있다.

성내의 시설로는 동·서에 2개 성문과 1개 우물 외에도 진사(鎭舍) 3칸·객사(客舍) 2칸·익랑(翼廊) 3칸·군기고(軍器庫) 등이 들어서 있었다.

또한 정조대에 발행한 『제주병제봉대총록(濟州兵制烽臺總錄)』에 따르면 주둔군으로서 조방장 1명, 치총(雉摠) 2명, 서기 7명, 성정군 168명, 방군 202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조방장은 1706년(숙종 32)에 만호(萬戶)로 승격되었다가, 1718년(숙종 44)에 다시 조방장으로 환원되었다.

수산진성과 연계된 관방 시설로서는 수산봉수·독자 봉수·성산 봉수·협자 연대 등과 아울러, 동남쪽 해변의 환해장성을 들 수 있다.

[현황]

2012년 현재 수산 초등학교 교사와 운동장 돌담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둘레는 544m, 성 너비 3.3~5.7m, 성 높이 3.5~5.3m로 성곽의 형태는 거의 정방형에 가까우며 성의 서·북면 모퉁이에 2개소의 격대가 남아 있다. 진성의 동문 지역에는 과수원이, 서문 지역에는 학교 관사가 들어서 있다.

동쪽과 북쪽 성벽이 만나는 지점에는 진앙할망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여기에는 수산진성 축성과 관련한 전설이 내려 오고 있다. 즉, 수산진성을 축성할 당시 성이 자주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이를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13세 어린 소녀를 공양하여 성을 쌓았고, 이후 성이 다시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이 그 소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당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깃들어진 곳으로, 여전히 마을 또는 개인에게 큰 일이 있을 때 찾아가서 빌면 효험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있다.

2005년 10월 5일 제주도 기념물 제 6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수산진성은 다른 8개의 진성과는 다르게 보존이 상당히 양호한 편으로 특히 성곽과 치성 등의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기 때문에 차후 제주도의 성곽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지킴이 '수산진성 2005.10.05.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2호' 입니다.
'제주도 기념물' 이라고 쓴 부분 올바르게 수정해주세요.
참고: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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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내용은 향후 수정증보 사업을 통해 반영하겠습니다.
2020.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