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611
한자 五座首義擧碑
이칭/별칭 오좌수 행적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95년 6월 17일연표보기 - 오좌수 의거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2009년 8월 15일연표보기 - 오좌수 의거비 대정읍 하모리로 이전
현 소재지 오좌수 의거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최남단해안로 13 홍마트 도로 맞은편지도보기
원소재지 오좌수 의거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최남단해안로 4 입구 신영물지도보기
성격 금석문
관련 인물 이만송|이흥복|김성만|정종무|김성일
재질 오석, 화강암, 현무암 자연석
크기(높이) 130㎝[기단]
너비 210㎝~240㎝[기단 정면]
두께 120㎝~150㎝[기단 측면]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다섯 의사(義士)의 행적을 기념하여 세운 비.

[개설]

1876년 강화도조약과 1883년 재조선일본인민통상장정(在朝鮮日本人民通商章程) 체결이후 일본 어민의 반어반적(半漁半賊)인 제주 침탈이 가속화되자 제주 어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다. 일본의 제주연안 어업침탈 과정 중 1887년(고종 24) 8월 가파도에 6척의 일본 잠수기선이 정박하여 어로작업을 하였다. 그러던 중 식수를 찾아 대정읍 하모리신영물’에 온 일본인들이 노략질을 하고 부녀자들을 능욕하였다. 이에 격분한 하모리 출신 이만송(李晩松)·이흥복(李興福)·김성만(金成萬)·정종무(鄭宗武)·김성일(金成鎰) 등 5명이 주동이 되어 청년들을 이끌고 일본 어부와 격투를 벌였다. 그 과정에 이만송은 일본인의 칼에 참수(斬首)를 당하고, 김성일은 손이 절단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조정에서 다섯 의사의 의협심에 감복하여 좌수(座首)의 직을 내리게 되었다.

[건립 경위]

오좌수 의거비는 본래 1995년 6월 17일 서귀포시 모슬포 청년회의소가 대정읍 하모리 신영물 가에 다섯 의사의 행적을 후세에 알려 기리고자 세웠다. 이후 도로확장 등으로 비가 시야에 잘 보이지 않게 되자 모슬포 청년회의소가 다시 2009년 8월 15일 원 소재지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으로 옮겨 세웠다.

[위치]

하모리 읍내 중심가에서 가파도 마라도 정기여객선 대합실로 가는 도로를 찾아 항구쪽으로 이동하면 최남단 해안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가 시작되는 곳 우측 다리 아래에 신영물이 있고, 신영물에서 정기여객선 대합실로 가는 도로변에 오의사 의거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비는 화강암으로 된 기단에 제주산 현무암 자연석을 올려놓은 형태로 되어있다. 기단의 높이는 130㎝, 기단의 정면 가로는 210~240㎝, 기단의 측면 가로는 120~150㎝이다. 기단에 오석으로 된 석판을 붙여 오좌수의 행적과 건립주체 및 건립일자 등을 한글로 새겨 놓았고, 기단 위 자연석에는 해서로 ‘오좌수 의거비(五座首義擧碑)’라고 새겨놓았다.

[금석문]

1. 기단 전면

거룩하도다 대정현 하모리 태생 다섯 장정들!

이만송(李晩松)·이흥복(李興福)·정종무(鄭宗武)·김성만(金成萬)·성일(成鎰) 형제 등

일본제국주의는 조선과의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침략을 일삼아오던 중, 1887년 봄(고종 24년) 일본 잠수기선 14척이 가파도 주변에서 어획물을 침탈하면서 식수는 이 곳 신령물을 이용하였다.

가파도에 천막을 치고 전복을 침탈하던 왜선(倭船) 6척의 선원들은 1887년 8월 13일 모슬포에 상륙하여 민가의 돼지, 닭 등 가축을 약탈하고 신령물 샘터에서 물긷는 지역 아녀자를 능욕하려들자 이 처사에 격분한 이만송·이흥복·정종무·김성만·성일형제가 주동이 되어 청년들을 이끌고 격투를 벌였는데, 그들의 환도에 이만송은 참수(斬首)를 당했고, 김성일은 손이 절단되는 등, 칼로 무장된 그들을 몽둥이로 응징하려함은 불가항력이었다.

그 후, 이 사건은 조정(朝廷)에 알려지며 맞서 싸웠던 다섯 사람에게는 이들의 용기를 포상하여 각기 좌수(座首)의 벼슬을 하사하였고, 함께 싸웠던 이름 모르는 하인에게는 벼슬 대신 하사금 30냥을 내려주었다. 120여년전 관군(官軍)도 나서지 못했던 역할을 약소국의 백성으로서 목숨을 걸고 실행했던 거룩한 행동을 후세에 영원히 기리고저 모슬포 청년회의소 이름으로 이 비(碑)를 세웁니다.

             광복64주년 모슬포 청년회의소 창립 35주년 기념

                          JCI

2. 기단 전면 우측하단

제36차 제주지구회원대회기념

주최 : 제주지구33대회장 강시범

주관 : 모슬포청년회의소

                34대회장 장영수

3. 기단 좌측

이전 설립

2009년 8월 15일

광복 64주년 기념

창립 35주년 기념

모슬포청년회의소 37대 회장 김태완

4. 기단 우측

최초 설립

1995년 6월 17일

광복50주년 기념

창립21주년 기념

모슬포청년회의소 23대 회장 김흥태

[현황]

오좌수 의거비는 건립 주최인 모슬포청년회의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근래에 세워진 비여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오좌수 의거비는 1883년 재조선일본인민통상장정(在朝鮮日本人民通商章程) 체결이후 노골적으로 드러난 일본 어민의 제주 연안 수산자원의 침탈상에 따른 제주도민들의 생존을 위한 자주적 항거의 사례를 보여주는 기념비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