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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620
한자 上摹里遺物散布地
이칭/별칭 상모리 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산포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71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강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5년 - 상모리 조개더미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5년 7월연표보기 - 상모리 유물산포지 1지구 긴급 수습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8년연표보기 - 상모리 조개더미 학술발굴조사 진행
소재지 상모리 유물산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71번지 지도보기
성격 유물산포지|청동기시대유적지
면적 10,000㎡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산포지.

[개설]

상모리 유적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면서,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고멍무늬 토기 문화의 마지막 전파지역이다. 이 유적은 제주도의 민무늬 토기를 대표하며,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층위별로 출토양상이 명확하여 제주도 민무늬 토기의 변천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대정읍 상모리 71-1, 2번지에 자리한다. 유적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산이수동마을에서 동쪽으로 400m지점에 위치한다. 해안가에 길게 형성되어 있는 이 유적의 범위는 남북 100m, 동서 500m에 이르며, 바다와의 거리는 불과 20m 정도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이 유적을 조사하게 된 경위는 1985년 3월 윤정수 교수[제주대 해양학과]가 상모리 산이수동 해안가 사구층에 패각층이 관찰된다는 제보에 의해서 조사하게 되었다. 재차 조사과정에서 1985년 7월 대정읍에서 관내 도로연변 화단을 조성하기 위해 유물산포지 1지구의 흙과 잔디를 파서 운반함으로써 문화층과 무수한 토기 조각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1985년 8월 유물 산포지1지구에 대한 긴급 수습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후 3년이 지난 1988년에 조개무지의 성격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상모리 유적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 조사되었다. 생활 주거지와 조개무지구역으로, 전자는 남쪽에 있는 평탄한 유물산포지와 퇴적층 구역이고 후자는 사구층 지역과 그 주변이다.

[출토 유물]

상모리 유물산포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직립구연토기·간토기[丹塗磨硏土器]·마제석부·석착·갈판·갈돌 등이다.

[현황]

먼저 유물산포지 1지구는 상모리 유적의 가장 남쪽에 있는데, 해안을 따라 길이 100m, 폭 30m의 평평한 초지이다. 1지구의 유물 분포는 거의 전역에 걸쳐 산포되었는데, 특히 유물이 집중 출토되는 지역은 발굴구역의 서북편으로, 이 구역을 중심으로 생활 활동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구역에서의 생활 활동을 뒷받침할 시설물은 4층에서 사질점토층을 둥그렇게 파 내려간 화덕자리 1기만 확인되었을 뿐 별다른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다. 여기서 유일한 생활 시설물로 확인된 화덕자리는 남쪽 핏트에서 제4층을 파 내려가다 확인하였다. 제4층의 사질점토층을 거의 원형으로 파내어 만든 것으로, 지름이 68㎝이고, 깊이 18㎝의 크기이다. 화덕 내에 자갈을 돌리는 등의 시설보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 화덕 내에서는 시커멓게 재가 섞인 흙과 소수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발굴지의 남쪽에서는 화덕자리 1기와 집자리터로 생각되는 시설물이 확인되었다. 이 화덕자리는 생토층을 둥그스럼하고도 얕게 구덩이를 판 다음 자잘한 자갈과 잡석을 깔아놓은 것으로 돌틈 사이에서 목탄이 확인되었다. 화덕의 지름은 1.8m 정도이고 자갈의 크기는 길이 10~30㎝정도이다. 집자리로 추정되는 유구는 화덕자리의 남동쪽에 인접하여 있는 것을 보고 확인하였다. 동서 길이 3.36m, 남북 폭 2.95m로 네모꼴에 가까운 부정형으로 바닥은 다소 단단하게 다져져 있었다.

유물산포지 2지구는 대정읍 상모리 71-2번지에 자리한다. 앞서 1지구에서 북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높이 6m 내외의 해안 사구에 감싸인 구역에 있다. 해안쪽으로 사구가 있어 해안바람을 차단하고 있으며, 내륙쪽으로는 너른 평야지대와 연결되어 있다. 해안사구에 수십년전에 만들었다고 하는 높이 2.5m의 축대가 조성되어 사구 모래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유구의 범위는 길이 40m, 폭 10m로 추정된다. 유구의 바닥은 불 등을 지펴서 다져진 사질토층으로 바닥 전면에 걸쳐 토기, 석기 등의 파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유구 범위 밖의 자연 바닥은 푸석푸석한 모래층으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아 대조가 된다. 그러나 이 자연바닥과의 경계는 뚜렷한 높이 차이가 없어, 보통 움집터의 양상과 다르다. 유구의 북쪽구역에서 마연토기편이 비교적 많이 출토된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이 구역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20㎝ 내외의 자갈돌이 4개가 둥그렇게 돌아가고, 그중 하나는 바닥층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 눈에 뜨이는데, 혹시 간단한 나무기둥을 버티던 돌들일 가능성도 있다.

상모리유물산포지와 인근 조개무지를 조사한 결과를 요약하면, 우선 유물산포지 1지구에서 아래층에서는 평안도 지방 팽이형 토기의 요소와 함경도에서 출발한 고멍무늬 토기로 복합되는 흔암리 유형의 제1군 고멍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유물산포지 제1지구 중간층과 2지구에서는 제1군 고멍무늬 토기 보다 발달한 공렬+골아가리토기 요소와 팽이형 토기 요소가 복합하는 제2군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유물산포지 1지구 맨윗층과 조개무지 1지구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팽이형토기 요소가 완전히 사라지고 순수 공렬, 골아가리 장식만이 장식되는 제3단계토기가 출토되었다.

제1,2군 토기는 남한강 중류의 흔암리 집자리유적, 금강 상류의 청주 내곡동, 낙동강 유역의 경주 내남리유적, 진구 사평리, 부산 반여동 등지에서 확인된 바 있어, 남해안을 걸쳐 이곳 제주도 최남단에 도달한 남한지방토기라는 것이 드러났다. 제3군 토기는 설명했듯이 상모리유적 말기단계 고멍무늬 토기로 제주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 파급되었다. 연대상으로 제1군의 토기는 동일 기종의 토기가 출토되는 한강 유역의 여주군 흔암리 7호,14호 집자리의 방사성탄소연대(B.C. 790~350, B.C. 400~140)를 참조해 볼 때, 기원전 500년경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3군은 조개무지 1지구에서 출토된 삼각단면의 점토띠토기로 보아 기원전 1세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상모리 3기에 와서 제주도 고멍무늬 토기가 제주도 여러 곳에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후술할 탐라 초기의 삼양동식 토기 유적의 분포권과 거의 비슷하게 맞물린다. 제주도 고멍무늬 토기 형성과 발전단계 곧 상모리 1,2군은 지금까지 상모리 유적에서만 확인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상모리 1,2군 토기가 다른 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을 경우 제주도 민무늬 토기의 형성은 상모리 유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상모리 유적은 우리나라 전기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문화의 전파 과정과 제주도 유입과정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제주도 최초의 농경을 시작했고 마을 만든 정착주민 집단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012년 현재 제주도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상모리유적[유물산포지 및 조개무지]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점이다. 조속한 시일내 문화재 지정이 시급한 유적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