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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오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89
한자 軍威吳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만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456년 - 군위오씨 입향
본관 군위 - 대구광역시 군위
입향지 군위오씨 입향지 -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군위오씨 집성지 - 제주도 서귀포시 신효동
성씨 시조 오숙귀(吳淑貴)
입향 시조 오석현(吳碩賢)

[정의]

오숙귀(吳淑貴)를 시조로 하고 오석현(吳碩賢)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오씨는 우리나라 249성 가운데 13위에 해당하는 성씨로, 제주에 사는 오씨는 군위오씨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11월 현재 제주에 현존하는 135성 가운데 제9위에 해당한다. 대구광역시 군위(軍威) 지명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첨의 24세손인 동복군(同福君) 오현좌(吳賢佐)의 둘째 아들 오숙귀(吳淑貴)를 시조로 하고 있다. 오숙귀는 고려 숙종 때 19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올라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군위군(軍威君)에 봉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오숙귀의 후손들이 군위에 정착, 세거하여 동복 오씨(同福吳氏)에서 분적한 뒤 본관을 군위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연원]

오씨의 도시조는 서기 501년 신라 22대 지증왕 때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건너왔던 오첨(吳瞻)[무혜공(武惠公)]으로 전해진다. 군위오씨 제주 입도조 오석현(吳碩賢)은 도시조 오첨의 34세손이며 숙귀공의 10세손이다.

[입향 경위]

오석현은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36세에 나주 영장(營將)이 되었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하고 성삼문·박팽년 등 충신들을 무참히 죽이자 1456년(세조 1) 벼슬을 버리고 제주도에 입도한 후 성산읍 신양리(新陽里)에 정착하여 도민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농업을 장려하여 지역 주민들이 감화되어 많이 따르게 되어 덕망이 높았다.

2세인 철순(哲舜)은 여절교위(勵節校尉) 부사직(副司直)[오위에 속한 종5품] 무관직을 역임하였고, 손자인 세춘(世春)[어모장군(禦侮將軍) 정3품]에 이르러 신양리에서 난산리로 옮겨 살았다. 증손 윤걸(允傑)[정략장군(定略將軍) 종4품]의 아들 4형제에서 장파·중파·중말파·말파 등 크게 4파로 갈라져서 제주도 내에서 분산하여 살면서 가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장파의 파조인 입도조 5세손 수홍(守弘)[어모장군 수군첨절제사(禦侮將軍水軍僉節制使)]은 그 세거지를 제주시 아라동으로 옮겼다. 중파의 파조는 입도조 5세손 수성(守城)으로 통덕랑(通德郞), 유향좌수(留鄕座首)를 지냈으며, 난산리에 정착한 후 후손들은 위미·서귀·신효·하효·상예·창천·남원 등 각 마을의 입향조를 이루었다. 중말파는 유향 좌수를 지낸 입도조 5세손 수간(守幹)을 파조로 하고, 난산리에서 표선면 가시리로 이주하였다. 그후 서귀포시 신효·상효·토평·상효·동홍·수산·오조리·성읍·위미·신풍 등지에 입향하여 벌족을 이루고 있다. 입도조 5세손 수의(守義)는 난산리에 정착하여 말파를 형성하였으며, 무과 급제 후 대부 찰방과 유향 좌수를 지냈다. 후손들도 마찬가지로 의귀·토평·화순·안덕·호근·창천·중문·한림·금악·우도·위미·신양 등 각 마을로 입향해 번성하였다.

[현황]

오늘날 제주에 사는 군위오씨 인구는 2000년 11월 현재 16,732명이며, (구)서귀포시 지역에는 1,594가구에 5124명이 거주하여 단일성씨로는 (구)서귀포시 지역에서 제2위의 성씨에 해당한다. (구)남제주군 지역은 1,417가구에 4,118명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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