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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923
한자 康時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강시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강시검 일제의 식민지정책을 비판하는 원고를 작성하여 졸업간담회에서 발표, 체포 투옥됨
몰년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강시검 사망
학교|수학지 강시검 수학지 - 일본 오사카 흥국상업학교
성격 항일 학생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학우를 동지로 규합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학생운동가.

[가계]

본관은 신천. 1924년 서귀면 법환리 1369번지[지금의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강성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강시검(康時儉)은 어릴 때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낮에는 선반공으로 노동을 하며 흥국상업학교 야간부에 재학하였다. 평소 민족 의식이 강하여 민족 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42년 9월경 학우인 이영문·강권우 등을 동지로 규합했다. 강시검은 이들과 함께 “인도의 독립운동은 인도인 학생들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듯이 조선독립운동의 중심은 우리 학생들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파하는 등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펼쳤다.

1942년 12월 중순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위해 일본 교육을 받는 것에 분개하고, 주권 회복과 우리 고유 풍속과 언어를 지킬 것을 주장하는 원고를 작성, 등사하여 친우들에게 전달하고, 졸업 기념 간담회에서 이 원고를 낭독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강시검은 1942년 12월 27일 일경에 체포됐으며 1943년 5월 10일 검찰에 송치돼 옥고를 치렀다. 강시검은 1982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광복절에 독립 유공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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