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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011
한자 房東華
이칭/별칭 방하룡(房河龍),방처사(房處士)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금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 8월 8일연표보기 - 방동화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4년 - 방동화 기림사에서 출가
활동 시기/일시 1918년 - 방동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체포, 투옥됨
몰년 시기/일시 1970년 12월 28일연표보기 - 방동화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방동화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방동화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학교|수학지 기림사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활동지 법정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지도보기
묘소 광명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지도보기
추모각 의열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지도보기
성격 항일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좌대장, 원만암 승려, 조선불교 제주교구 교무원장, 대한불교 제주교무원 교무회의장

[정의]

1918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개설]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은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마을 주민 등 700여명의 시위대는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제주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곤봉과 화승총 등으로 무장하여, 도순리 법정사에서 출발하여 중문리까지 진출하였다. 시위대는 전선과 전신주를 잘라 통신을 끊고, 경찰관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일본인을 집단 구타하는 등 일제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였다.

방동화(房東華)김연일·강창규 등과 함께 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한 법정사 항일 운동의 주도세력이다.

[가계]

방동화(房東華)는 1887년 8월 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방우필(方佑弼), 어머니는 송양아(宋良娥), 아들로 방진주가 있다.

[활동 사항]

방동화는 한학을 배우다가 관음사의 승려였던 김석윤과 강창규가 자신들의 스승인 박만하가 있던 경주의 기림사로 보냄에 따라 거기에서 출가하였다. 방동화는 기림사 승려였던 김연일·정구용 등과 함께 제주도에 들어와 법정사에서 승려로 활동하였다. 1914년부터 김연일법정사 주지로 활동하며 법정사 신도들에게 항일 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동안 방동화박주석을 초빙하는 등으로 김연일을 도와 법정사 항일 운동을 계획하는 활동을 하였다. 거사를 위한 조직에서 방동화는 좌대장을 맡아 총지휘자인 김연일을 보좌하였다.

1918년 10월 7일 법정사 예불일의 새벽 기도를 마치고 34명의 선봉대가 거사를 실행하였다. 방동화는 거사 현장에서는 피신하였다가 한 달여의 은신 후 체포되어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제주도 하원리 원만암에서 불교활동을 재개하여 제주불교계에서 활동하였다. 1939년에는 제주불교연맹 활동, 1945년 조선불교혁신 제주도 승려대회에 참석하여 조선불교 제주교구 교무원장으로 선임되었으며, 대한불교 제주교무원 교무회의장도 역임하였다.

[묘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광명사에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방동화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에 대한 공훈으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고,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에 있는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 발상지(戊午法井寺抗日運動發祥址)에 건립된 의열사에 영정이 모셔져 독립운동의 뜻이 기려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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