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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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靜鄕校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3126 외 6필지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문기 |
건립 시기/일시 | 14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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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653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1년 8월 26일![]() |
현 소재지 | 대정향교 -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312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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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향교 |
양식 | 전학 후묘 |
문화재 지정 번호 | 제주특별자치도 유형 문화재 제4호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조선 시대 지방 관립 학교.
[개설]
대정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향으로 좌우에 4성위(四聖位)[안자·증자·자사·맹자]를 모시고, 동·서무(東西廡)에는 각각 송조 2현[주돈이·정호·정이·주희]와 동국 9현을 모셔 모두 5성 22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데, 소설위(小設位)에 해당된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제를 봉행하고 있는데 주로 안덕면과 대정읍의 유림들이 참여하고 있다.
[변천]
대정향교의 건립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태종실록』과 『세종실록』의 기사를 고려해 볼 때, 대정현이 설치된 2년 뒤인 1418년(태종 18) 또는 1420년(세종 2) 현성(縣城) 안에 세워진 듯하다. 1653년(효종 4) 목사 이원진(李元鎭)의 주도 하에 현재의 위치인 단산(簞山) 아래로 옮겼는데 현감 권극중(權克中)이 주관하고 강천로(姜天老)가 도감(都監)을 맡았다. 그 뒤 1669년(현종 10)·1688년(숙종 14)·1752년(영조 28)에 중수가 이루어 졌고 1772년(영조 48)에는 도감 이관(李寬)이 명륜당·전사청·서재(西齋)를 1835년(헌종 원년)에는 목사 박장복(朴長復)이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이후 1925년 명륜당이 중건되었고, 1950년 6·25 전쟁 때에는 훈련병의 숙소로 이용되었다가 1978년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형태]
대정향교는 1,181평[부속지는 4,145평]의 부지에 구릉을 끼고 있어 전면에 강학 공간인 학당을 두고, 높은 뒤쪽에 배향 공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밖으로는 외성(外城)이 둘러져 있고, 동남쪽과 서남쪽에는 각각 동정문(東正門)과 대성문이 있는데, 이들의 문을 들어서면 북향의 명륜당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중앙에 큰 대청을 두고 있으며, 앞쪽[북쪽] 양쪽에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동재와 서재 앞쪽[북쪽] 한 단 높은 곳에는 내성이 둘러져 있고, 그 가운데에 내삼문이 있는데, 이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이며, 내부는 통 칸으로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현황]
대정향교는 현재 제주도 향교재단에서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향교에는 조선 시대의 각종 기록 유산들이 소장되어 있다. ‘명륜당(明倫堂)’ 편액은 1811년(순조 11) 현감 변경붕이 주자의 글씨를 본떠 쓴 것이고, ‘의문당(疑問堂)’ 편액은 훈장(訓長) 강사공(姜師孔)이 추사 김정희(金正喜)에게 글씨를 청하여 단 것이다. 소장 전적류로는 1670년(현종 11)~1811년(순조 11)까지의 『유안(儒案)』, 『유적(儒籍)』, 『전재임안(前齋任案)』, 『청금록(靑衿錄)』 등이 있다. 또 목판에 새긴 절목(節目), 중수기(重修記), 게시(揭示) 등이 전하는데 절목의 경우 액내유생과 청금유생 등에게 요역과 군역을 부과하지 말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주요 비석으로는 「목사 박공장복 존성애사비(牧使朴公長復尊聖愛士碑)」[1836], 「현감 권극중 존성흥학비(縣監權克中尊聖興學碑)」[1662], 「현감 김공재호 애사비(縣監金公在浩愛士碑)」[1827], 「현감 장공시열 존성애사비(縣監張公時悅尊聖愛士碑)」[1836], 「현감 송공두인 존성애사비(縣監宋公斗仁尊聖愛士碑)」[1894]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대정향교는 서귀포시 서부 지역 유림들의 활동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향교와 관련된 전적류와 고문서, 현판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시대 대정향교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