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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2006
한자 金大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김대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김대유 전남도지사에게 보성·인성·안성 등지의 학교 개설 신청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김대유 공출량을 줄이고 구휼곡을 수령, 분배
몰년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김대유 사망
출생지 김대유 출생지 - 서귀포시 대정면 상모리 3775번지 지도보기
묘소 김대유 묘소 -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봉 가족묘지지도보기
성격 행정가
성별
대표 경력 대정면장

[정의]

일제 강점기의 제주특별자치도 대정읍 상모리 출신의 행정가.

[가계]

1905년 대정면 상모리 3775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아버지는 김여홍(金麗弘), 어머니는 이창화(李昌花), 동생으로는 항일운동을 했던 김만유(金萬有), 지방의회에서 활약한 김경유(金景有)가 있고, 부인은 허지자(許智子)이다.

[활동 사항]

김대유(金大有)는 대정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농업학교를 거쳐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귀향하여 제7대 대정면장으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힘을 썼다.

1931년에는 대정관립심상소학교가 모슬포로 이전하여 보성·인성·안성 등지의 학생들이 장거리 통학으로 불편하게 되자, 이태영·오태운·기창문 등의 대정고을 3개리 대표 등과 함께 전남도지사에게 학교개설을 신청, 1940년에 보성초등학교의 전신인 사설 대정학술강습회가 정식으로 인가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특히 공출이 주민들의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가 재임하던 1942년 제주에는 큰 기근이 들었다. 이때 그는 제주도시가 주관하는 회의에서 대정면에 할당된 미곡 등 공출량을 크게 줄이고, 동시에 최대한으로 구휼곡을 수령하고 적절하게 분배하여 면민들에게 칭송을 들었다.

[저술 및 작품]

대정면장 시절에 대정면 관내에 여러 마을에 향약을 남겼는데, 일과리 2구의 향약이 아직 남아 있다.

[묘소]

김대유는 43세의 나이로 1948년 인천시 부평동 신촌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고향인 제주 대정읍 모슬봉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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