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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죽사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01
한자 松竹祠-
이칭/별칭 동계사(桐溪祠) 터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43년(헌종 9)연표보기 - 송죽사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871년(고종 8)연표보기 - 송죽사 훼철
현 소재지 송죽사 터 - 제주 대정현 막은골 지도보기
원 소재지 송죽사 터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86번지 일대지도보기
성격 사묘|사당

[정의]

1843년(헌종 9) 제주목사 이원조에 의해 동계 정온(鄭蘊)의 적거지에 건립한 사묘.

[개설]

동계사(桐溪祠)라고도 불리는 송죽사 터는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86번지에 있다. 1843년(헌종 9) 제주목사 이원조광해군 때에 대정현에 유배되었던 그의 외조부인 동계 정온을 배향하기 위해 그의 적거지에 건립한 사묘이다. 송죽사 터라고 명명되어진 배경에는 당시 정온제주 대정현에 유배되면서 손수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키웠고 유배가 풀려 중앙으로 돌아간 뒤에는 이를 시로 읊었기 때문이며 송죽을 정온의 절개에 비유하여 붙였다 한다.

[변천]

송죽사 터는 1614년(광해군 6) 광해군을 비판하는 상소 때문에 유배된 동계 정온이 10년 동안 살았던 대정현성 동문 속칭 ‘막은골’에 위치하고 있다. 1799년(정조 23)에 부종인(夫宗仁)이 대정현감으로 부임하여 열락재(悅樂齋)라는 서당을 창건했던 곳이라는 데서 일명 ‘서당터’라고도 한다. 1843년(헌종 9)에 정온의 절개를 소나무와 대나무에 비유하여 송죽사 터를 건립하고 그의 넋을 기렸는데 현판은 제주목사 이원조가 건립하였고, 송죽사 터의 제액(題額)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이때 현판도 유실되었다.

[현황]

현재 송죽사 터는 과수원과 민가 사이에 터만 남아 있으며 1842년(헌종 8) 당시 제주목사 이원조가 세웠던 ‘동계정온 적려유허비(桐溪鄭蘊 謫廬遺墟碑)’의 기단석이 돌담 아래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다만 과거에는 이 송죽사 터가 세워진 터에 이후 대정서당이 자리하여, 교육공간으로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대정현에 유배왔던 추사 김정희의 유배길이 콘텐츠화 되어, 1코스 집념의 길의 한 코스로 송죽사 터를 안내하고 있어 올레꾼과 같은 관광객들에게 역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송죽사 터동계 정온제주 대정현에 유배되어 10년간 생활하였던 적거 터이면서 당시 많은 책을 가지고 들어와 독서와 시문의 교류를 통해 대정현 사람들과 교화하는 공간이었다. 특히 1850년경에 제주목사 장인식이 쓴 『귤림서원묘정비기(橘林書院廟庭碑記)』에도 알 수 있듯이 “[동계 정온] 유허에 송죽사 터를 세워 대정현 선비들이 장수(藏修)하는 곳으로 삼았다.[유허입공죽사 위현사장수지소(遺墟立松竹祠 爲縣士藏修之所)]”고 기록을 보아서도 당시 대정현에 유배왔던 동계 정온의 굳은 절개와 결의가 바로 이 송죽사 터에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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