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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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유역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청동기시대 남강 유역에는 최근 발굴 자료와 연구 성과로 통해 볼 때 고인돌, 돌덧널무덤, 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묘제가 분포하며, 이들 분묘는 묘역을 가지면서 거주 공간과 공존하거나 혹은 독립적인 형태로도 존재하고 있다. 남강 유역에서 발굴된 고인돌유적은 대평리, 상촌리, 내촌리, 귀곡동, 강루리, 사월리 유적(1기)의 6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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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옥방 2호 고인돌이 입지한 대평리 유적은 남강 유역에서 S자형으로 심하게 곡류하는 지점에서 퇴적사면인 강안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옥방 2호 고인돌이 속해 있는 대평리 유적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연차적으로 조사, 발굴되었다. 옥방 2호 고인돌이 속해 있는 대평리 유적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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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004년 진주시·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으나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마진리 고인돌은 크게 1, 2로 구분된다. 마진리 고인돌1 유적에는 2기의 고인돌이 있다. 1호 고인돌은 뚜껑돌의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크기는 길이 140㎝, 너비 110㎝, 두께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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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004년 진주시·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의해 알려졌다.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고, 주변에서 채집된 유물은 없다. 주민들에 따르면 옛날에 이곳에 바위 3개가 있었으며, 이를 “삼바우”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수면 압사리 송정마을에 있는 지수초등학교 북쪽의 도로변에 있는 솔밭에 「야은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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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옥산리 원촌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004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해 알려졌다. 두 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으나 발굴은 시행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채집된 유물은 없다. 남강 남동쪽의 남해고속도로와 2번 국도 변 옥산리 원촌마을에 있다. 원촌 고인돌①은 마을의 동쪽 어귀의 경작지에, 원촌 고인돌②는 마을의 북쪽에 있는 구릉의 민묘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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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유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 -경상남도-』와 2003년 진주시와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의해 학계에 알려졌으나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유곡리 13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집현면에서 미천면으로 향하는 도로의 북동쪽에는 지석마을이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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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003년 진주시와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에 위치하고 있다. 금곡면 소재지에서 죽곡으로 향하는 도로의 남쪽과 위천강의 지류 사이에 있는 밭에 위치한다. 유적에는 3기의 고인돌이 있다. 1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가 길이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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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2003년 진주시·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으며,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 진동마을에 있다. 황강의 남쪽에 있는 진성면 가진리 진동마을의 동남쪽에 있는 경남체육고등학교의 운동장 서쪽에 있는 얕은 야산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유적에는 1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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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진주 귀곡동 대촌고인돌은 대촌마을의 해발 95m 야산에서 갈라진 저구릉상의 사면에 입지한다. 진주 귀곡동 대촌고인돌은 남강댐 보강공사로 인해 1993년도에 실시한 남강댐 수몰예정지역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고인돌 4기와 고인돌 주위에서 민무늬토기 및 삼국시대 토기편이 확인되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남강댐 수몰예정지역 종합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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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004년에 진주시와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진주시 문화유적분포지도』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고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 청천마을에 있다. 남강의 동쪽에 있는 금산면 중천리 청천마을에서 윗덕의마을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한다. 유적에는 1기의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 크기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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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진주 망진산 북동쪽에 있는 칠암동 김모씨의 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서 채집된 유물은 없다.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대형에 속하는 고인돌 1기가 보고되어 있다. 현재 칠암동의 도시개발로 인하여 유적을 확인할 수 없다. 주변에 칠암동고분군이 있어 고분군을 조사할 경우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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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덕오리에 있는 고분. 1985년 10월 덕오리의 한 주민이 밭을 갈다가 발견된 돌창 1점과 돌살촉 4점을 국립진주박물관에 매장문화재로 신고하자 이 지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완형 민무늬토기 1점과 바닥 10여점, 그리고 몸통편이 대량 채집되었으며, 토제품으로 반파된 가락바퀴 1점과 그물추 1점이 채집되었다. 이밖에 석기로 도끼와 홈자귀, 대패날, 숫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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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 있는 고분군. 일제강점기 때에 이미 조사되어 알려진 유적이다. 용산리 마을에서 절터라고 부르는 산쪽으로 500m 정도 오르면 2기의 고분이 있었는데, 고분 사이의 간격은 20m 정도로, 직경 9m, 높이 1.5m 정도였으나 도굴되어 파손된 상태이다. 고분의 동북쪽은 절터로서 사찰의 축대가 남아 있고, 사찰의 석물 몇 점이 발견되었다. 또한 주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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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망진산(望晋山)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 진주시 망경동 망진산의 동쪽 산기슭에 위치한다. 주약동으로부터 칠암동에 걸쳐 상당수의 고분이 산재해 있다고 하였으나, 현재는 거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지수골의 최영세 소유 대밭 속에 연대가 확실치 않은 분묘가 확인된다. 높이 40m, 직경 5m 정도의 이 분묘는 가시덤불과 잡초로 뒤덮혀 있는데, 그 형태와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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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역의 동쪽에 있는 평촌저수지의 서쪽 야산에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현재 과수원과 밭으로 경작되는 곳과 잡목 등이 우거진 숲의 곳곳에서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유구는 도굴갱으로 보아 덧널무덤과 구덩식돌덧널무덤 주로 축조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발견되는 유구와 유물의 성격으로 볼 때, 고분군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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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가선리 가곡마을에 있는 삼국시대(가야) 고분군. 가곡마을 고분군은 해발 154m의 마기산에서 가곡마을 쪽으로 뻗어 내린 야산에 위치한다. 『진주시사』에는 사봉면 가곡리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가곡리는 일반성면 가곡마을 일대로 시사의 기록이 틀린 것으로 보인다. 1982년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진 후 지금까지 여러 번의 지표조사가 있었으나 정식 발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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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야산의 정상부와 사면에 수많은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과 8기 이상의 대형 고총(高塚)이 분포하고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이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서 처음으로 파악된 이래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이나 「가야문화권유적정밀조사보고(伽倻文化圈遺蹟精密調査報告)」 등에 계속해서 채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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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개암리에 있는 가야 후기의 고분.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으며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2번 국도를 따라 진주시 일반성면 소재지를 지나면 곧바로 개암리에 이르는데, 마을 안길의 끝에 있는 개암공묘원 입구 표지석을 지나 100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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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고분군.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산 187-2 일대에 있다. 1995년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구간 중 유적이 발견되자 문화재 보호 및 연구 차원에서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시목마을 일대를 중심으로 발굴작업을 하였다. 2개 지구로 나누어 오미리 산 187-2번지 외 약 4,30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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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와 일반성면 창촌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고분군. 일찍이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진양 무촌리 고분이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마을 남동방 약 500~600m지점의 구릉상에 있으며, 도굴되었다. 말무덤 또는 마을무덤이라고 전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고분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진양 무촌리는 행정구역상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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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이 고분군 일대에는 현재 진주강씨 집안에서 만든 일명 ‘봉의 알자리[봉란대(鳳卵臺)]’가 있는 지역으로, 옛날 시가지가 형성되기 전에는 상당수의 고분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고분군은 학계에 의하여 가야시대의 고분으로 밝혀졌다. 고분의 규모는 제법 크며, 고분의 위를 평평하게 다듬어 진주강씨의 시조인 강이식(姜以式)의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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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신당리 죽산에 있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고분군. 진주시의 북동쪽에 위치한 장흥리와 신당리에 형성되어 있는 들판 가운데 섬처럼 솟아 있는 독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2003년도에 경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는 이루어졌으나,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고분으로 볼 만한 뚜렷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나, 토기편 등이 산포되어 있어 수혈식 석곽묘 등의 고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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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에 있는 삼국시대(가야)의 고분군. 남강의 동안에 있는 지수면 압사리에는 남강을 따라 형성된 반월상의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압사리고분군은 이 들 한 가운데에 섬처럼 솟아 있는 독립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1983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된 고분군으로 지금까지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지 않고 있다.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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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면 금곡면 엄정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 삼곡리 사거리에서 1009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시평마을을 지나다보면 왼쪽에 엄정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나타나는데, 그 길 왼쪽 구릉에 위치한다. 조사결과 3기 정도의 고분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확인되었다. 1기는 저경 약 12~13m, 봉분높이 2~3m정도의 비교적 규모가 큰 유적으로 확인되며 도굴흔적으로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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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운천리 원당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문화유적총람』(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7)에 실린 ‘진양 운천리 고분’으로, 1980년대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자세한 내용이 파악되고 ‘원당 고분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원당마을 쪽으로 뻗어 내린 야산의 사면에는 크고 높은 봉토를 가진 돌방무덤 3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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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장재동 드무실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고분군. 『문화유적총람』(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7)에 ‘장재동 고분군’으로 실려 있으나 그 위치와 내용을 잘 알지 못하였는데, 2003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그 위치와 내용이 분명해지고 명칭도 ‘장재동 고분군①’로 정정되었다. 장재동 장재소류지 쪽으로 가는 길의 서쪽 야산 기슭에 있는 강학우 씨 집에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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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장재동 드무실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장재산 고분군’으로 기록된 고분군으로, 2003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그 위치와 내용이 분명해지고 ‘장재동 고분군②’로 정정되었다. 장재동 고분군①의 북쪽 야산사면에 위치한다.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이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 가야고분군이다. 돌방무덤은 1기가 확인되는데, 오래 전에 도굴되어 봉분은 훼손되고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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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 있었던 가야시대의 고분군. 『조선고적도보』에는 진주지역 출토품이 사진과 함께 간단한 설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출토고분의 위치나 성격을 잘 알지 못하다가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계기로 2000년 중안동 고분군 출토품으로 확인된 유물이 실측도와 함께 소개되었다. 고분의 위치와 유구의 성격은 알 길이 없다. 항아리 5점, 재갈 1점, 금동제 말띠드리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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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2003년에 경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는 실시되었으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구는 물론 유물도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다. 수곡면을 남북으로 잇는 1001번 지방도의 서쪽에 위치한 자매리 월계마을의 나지막한 야산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오래전 이곳 일대에서 삼국시대의 짧은목항아리를 비롯한 굽다리접시 등 경질토기편이 채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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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 산 456번지에 있다. 진주시의 동쪽에 있는 진주향교의 맞은편에 남북 두개의 봉우리를 가진 독립구릉이 위치하고 있다. 이 중 남봉은 해발 64.7m, 북봉은 해발 92.3m이며, 이 봉우리를 일반적으로 수정봉·옥봉으로 부르고 있다. 옥봉고분군은 이 구릉의 정상부인 두 봉우리 사이에 7기의 봉토분이 군을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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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에 있는 가야시대 고분군. 『문화유적총람』(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7)에 ‘호탄동 일대에 직경 10m 이내의 삼국시대 고분 3기가 있었으나 일제 때 도굴 파괴되었다.’고 기록되었으며, 이후 1985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었다. 1985년 지표조사 당시 진주시 개양역의 북쪽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봉분의 흔적이 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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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계원리에 있는 고려 초기의 고분. 서기 970년 경의 고분으로 전국의 고려고분군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다. 분묘의 주인공은 남양홍씨 고려은청광록대부상서우복야 홍의(洪毅)와 고려위위시경태자첨사 홍호(洪灝) 부자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로 가는 1006 지방도 노변에 있는 계원소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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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분묘. 진양강씨인 강보충(姜輔忠)의 묘이다. 강보충은 고려 말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관련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와 장흥리의 경계가 되는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비교적 큰 봉토를 가지는 고려시대 방형분묘이다. 묘 앞쪽은 대형의 석재로 단을 만들었으며, 분묘 주위에는 후대에 세운 비석이 있다. 진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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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의 진주정씨 3대 묘역. 이 고분군은 고려 충숙왕 때 숭정대부 의정부 찬성사를 지낸 정신중(鄭臣重) 내외의 합분(合墳)과 조선 초기의 대유학자이며 문장가인 문정공 정이오(鄭以吾) 내외의 분묘, 조선 초기의 좌의정을 지내고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장공 정분(鄭苯) 내외의 분묘 등 총 5기의 진주정씨 3대 묘역이다.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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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평거동 석갑산(石岬山) 남사면에 축조되어 있는 총 6기의 고려시대 방형분으로, 둘레돌에 고분의 축조시기와 피장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6기 모두 나주정씨(羅州丁氏) 집안의 무덤으로 고려시대 1079년(1호분)부터 1229년(6호분)까지 150년간에 걸쳐 축조되었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내부시설은 알 수 없으나,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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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에 있는 진양강씨 분묘군. 진양강씨인 강우덕(姜友德)[1385~1439]과 그 후손들의 집단 묘로, 조선시대의 분묘군이다. 강우덕의 자는 자보(子輔)이다. 1400년(정종 2) 감문위산원(監門衛散員), 1415년(태종 15) 승사랑 의영고 주부, 그해 가을에 선무랑으로 예안현감(禮安縣監), 사온서령, 의영고사(義盈庫使), 한성판관을 역임하고 14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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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있는 조선 중기로 추측되는 고분.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 설매마을 뒷산에서 설상으로 뻗어 내려온 구릉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간행한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설매리 마을 뒷산 대숲에 2기의 가야고분인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봉토분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2006년 재조사가 실시되었다. 봉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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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고분군.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 산 5번지 일대로 신흥마을[신령골] 과수원에 위치한다.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조선 초기의 방형분으로 그 연대가 정확하다. 더구나 부부를 합장하면서 횡장방형의 형태로 조성한 것은 특이한 예이다. 묘 주변의 부석, 산신제를 지내는 돌등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신안동 고분군의 묘역은 동서가 16m이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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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는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 고분군. 고분은 모두 6기로서 조선 태종 때 문신인 문충공(文忠公)인 하륜(河崙)[1347~1416]의 묘를 비롯해서 그의 조부인 문정공 하시원, 조모인 진양 정씨, 부친인 하윤린, 모친인 진양강씨의 묘가 모여 있는 진양 하씨의 문중 묘역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산 166번지에 있다. 1007번 지방도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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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 고분군.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산 162번지 일대에 있다. 진주시 평거동에서 명석면 쪽으로 가다가 우수골에 못 미쳐서 좌측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야산에 오르면 고분군이 나온다.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분묘의 외형은 지대석, 면석, 갑석으로 마련된 둘레돌 위에 흙으로 봉토를 쌓아 올린 것으로 평면상 장방형의 형태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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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정평리 응석사(凝石寺) 뒷산에 있는 조선시대 무덤 유적. 조선시대 전기의 사대부묘로 추정된다. 문인석의 형태로 보아 선조 후반에서 인조 연간에 걸친 17세기 전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위치한 삼국시대에 초창된 사찰로 알려진 응석사의 경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유적은 이미 원형을 잃었고, 문인석 1개도 도난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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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고분군. 무덤 주변에서 가야의 토기조각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오래 전부터 무덤자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조선 태종 때 사온서직장을 지낸 하현(河現)과 그의 부친인 하지명(河之溟), 모친 재령이씨의 묘 등 3기가 있다가 뒤에 수곡면 대천리에 있는 포산곽씨의 묘가 추가되어 4기가 있다.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선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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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진주시 금산면 소문리에서 갈전리로 연결되는 1009번 지방도의 서쪽 구릉에 인접하고 있다. 갈전초등학교 남쪽 해발 59m 가량의 구릉지 정상부와 서쪽 사면에 분포한다. 소량의 무문토기와 석기편이 채집되었다. 민무늬토기와 석기를 통해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로 추정되지만 입지로 보아 주거지 등 생활유적의 분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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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의 유적이 중첩되어 있는 복합유적. 귀곡동 유적의 위치는 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 귀곡마을 산66-19 일대였다. 귀곡동 유적은 남강댐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으로 1992년 경상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처음 확인되었다. 1997년에 경상남도 남강댐건설사업소에서는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몰지역의 확대에 따른 문화유적의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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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지역에 있었던 선사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유적.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상촌리, 내촌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다. 1967년 남강댐 제1차 공사과정에서 선사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처음 알려졌다. 그 후 1975년~1980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집터 4동과 고인돌 7기 및 돌널무덤 9기를 발굴·조사하여 유적의 대체적인 성격이 밝혀졌으며,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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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내촌동에 있었던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내촌동에 있었다. 덕천강의 지류인 당촌천의 제2단구상(段丘上)에 형성된 유적이었다. 1992년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구에 대한 지표조사 중 처음 발견되었으며, 1997년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유적의 층위는 가장 아래에 있는 자갈층과 모래층 및 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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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내촌동에 있었던 구석기시대 및 원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내촌동 북동쪽의 구릉지대에 형성된 유적이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의 유물포함층과 원삼국시대의 집터가 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 유물은 상부 점토층을 중심으로 가장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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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314-1번지에 있었으며, 남강 연안의 낮은 구릉 정상부와 사면에 형성된 유적이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6년~1997년까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과 집터 및 원삼국시대의 집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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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2지구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무덤. 남강에 의해 형성된 대평리 어은동과 옥방동 일대의 들판에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남강에서 조사된 무덤으로는 시신이 묻힌 장소 위에 커다란 바위를 덮개로 삼은 고인돌·돌로 시신을 넣을 관을 만든 돌널무덤·토기를 사용한 독무덤·나무관을 사용한 널무덤이 있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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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마을 일대에 있었던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마을 1336-2번지 일대에 분포해 있었다. 대평리 어은1지구 유적은 남강에 접한 자연제방 위의 집터와 그 배후사면의 경작지, 안쪽 자연제방의 주거 밀집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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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마을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마을 1303-6번지 일대에 있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1998년까지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지표에서 80~100㎝ 아래에서 생활유구인 집터 50여 동과 집터 주위에서 확인된 야외 화덕자리 3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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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751-1번지 일대에 있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9년 국립진주박물관과 경남고고학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환호 4열과 목책·경작지·집터·구덩이·고인돌·돌널무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중 유적의 북쪽에는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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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에 있었다. 남강에 접한 자연제방과 배후사면에 넓게 형성된 유적이었다. 남강댐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1998년까지 경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30여 동의 집터를 비롯하여 수십여 기의 구덩이 및 집석유구, 31기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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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858-39번지 일대에 있었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858-39번지 일대에 있었다. 남강댐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6년~1999년까지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의 여러 가지 유구가 넓게 형성된 유적으로 밝혀졌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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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1325-2번지 일대에 있었다. 남강댐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1999년까지 선문대학교 역사학과 발굴조사단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집터 42동, 생활유구 13기, 지상건물지 1동, 구덩이 9기, 야외 화덕자리 13기, 밭터, 돌널무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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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대평리 옥방6지구 유적이 위치하는 대평리 일대는 하천의 범람으로 강안이 확대되고 그 배후에 모래가 퇴적되어 현재 지층과 같은 충적대지가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신석기시대라고 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인간들의 생활공간이 이곳에서 시작된 것은 남강을 이용한 발달된 수로와 농경을 위한 넓고 평평한 대지, 풍부한 수자원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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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대평리 옥방9지구 유적이 위치하는 대평리 일대는 하천의 범람으로 강안이 확대되고 그 배후에 모래가 퇴적되어, 현재 지층과 같은 퇴적지대가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이 지역은 지형적으로 강변에 근접하는 곳으로 주로 자연제방과 대규모의 경작지 유구가 검출되었다. 대평리 옥방9지구 유적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8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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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남강다목적댐 개량사업의 일환으로 이 지역 일대의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특히 대평리 일대에서는 고인돌과 돌널무덤을 비롯하여 집터, 가마터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대거 출토된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평면에서 정식발굴조사를 한 결과,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유물이 대거 출토되어 지역이름을 따서 대평리 유적이라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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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지. 대평리 유적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는데, 특히 집터유적이 대거 발견되어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집터유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평리 유적지는 남강의 퇴적대지와 주변 평야지대에 위치한 청동시대 유적으로 옥방부락·어은부락·상촌부락에 걸쳐 넓게 분포하고 있다. 대평리 유적지가 위치한 대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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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덕오리 평촌마을 일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집현면 덕오리 평촌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야산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이다. 주로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편과 석기편들이 채집되고 있는데, 유적의 정확한 연대나 성격은 알 수 없다. 모두 4개소에서 집중적으로 유물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이 일대 구릉의 광범위한 지역에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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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남강유역에 있는 선사·고대의 복합유적. 이 유적은 남강이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이르러 U자상으로 곡각을 이루며 굽이쳐 흐르는 강안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많은 토사가 퇴적되기 쉬운 지형적 특성을 가진 곳이며, 이로 인하여 강안의 동편과 서편에는 넓은 충적대지가 발달해 있다. 남강댐 보강공사 및 하도개량공사로 인해 수몰·훼손되는 유적에 대한 구제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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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 있는 고인돌 및 선사유적.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506-2번지 외 12필지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상촌 일대 조사지역의 중앙부에 해당한다. 조사지역은 V자형 계곡 아래의 편평한 대지로 강가에 인접해 있다. 남강댐 건설 사업에 의해 수몰되는 지역의 선사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통하여 조사대상지역으로 선정된 상촌리 2호 고인돌 및 선사유적은 경상남도의 의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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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상촌리 선사유적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287번지와 395번지 일대의 밭 약 7,000평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다. 진주 남강댐 수몰지역 고고학 발굴조사를 위해 1996년 12월 23일부터 1998년 6월 30일까지 3차에 걸쳐 건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상촌리 일대는 A지구, B지구, 어성초밭, C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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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의 고인돌을 포함한 선사시대 및 청동기 유적. 한국수자원공사가 진주시 서부지역에 남강댐 건설사업을 벌임에 따라 수몰지역에 대한 발굴이 불가피하게 되어 국내 16개 대학 및 연구소 팀이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일대 1백만 평을 발굴 조사하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지표 하 2~3m 지점에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한시대의 유물이 거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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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 있었던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및 원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 있었던 유물산포지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의 무덤과 생활유적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남강댐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6년~1998년까지 동의대학교 박물관·동아대학교 박물관·한양대학교 박물관·건국대학교 박물관·대전보건대학 박물관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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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시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남강의 서편의 평야지대에 해당한다. 진주시와 집현면을 연결하는 장흥교를 지나서 14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1㎞ 정도 가면 길 좌측 편에 위치하는 독립구릉 상에 유적이 분포한다. 죽산 구릉에 목장을 만들기 위해 정지작업을 하던 중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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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정자리 엄정마을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 및 가야시대 고분군. 금곡면 정자리 엄정마을 북쪽에 위치한 야산 일대에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와 삼국시대 분묘군이 형성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작은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채집된 점과 이 지역의 완만한 지형이나 토양을 고려할 때 신석기시대의 집터 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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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내리 서촌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및 삼국시대 유적지. 수곡면 원내리 서촌마을 북쪽과 남쪽 야산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유적지로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와 삼국시대 분묘군이 형성되어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는 원내리 산 50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민무늬토기편이 채집되었다. 정확한 연대나 성격은 알 수 없으나, 지형을 고려하여 볼 때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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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유구 및 조선시대 기와 가마터. 진주-집현간 4차선도로 건설로 인하여 2000년에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시굴조사를 하였고, 동년에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160여기의 삼국시대 구덩유구와 조선시대 기와 가마터 7기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의 구덩은 중심연대가 4세기인 요지와 관련된 시설이며, 유물은 요지시설과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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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검정부락의 남쪽을 흐르는 천과 인접한 들판에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1974년 마을사람에 의해 청동기시대 유물이 수습되어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 -경상남도-』와 2003년 진주시와 함께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는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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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에 있었던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641-10번지 일대에 있었던 유적으로, 진양호의 서편 안말과 마당재를 잇는 농로 좌우의 낮은 야산과 구릉상의 대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강댐 2차 보강공사에 따라 유적의 일부가 수몰됨에 따라 1997년~1998년까지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1기의 유구가 발굴·조사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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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지역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진주시 평거동에서 명석면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우수골 북쪽 야산 정상부와 사면에 위치하고 동쪽 맞은편 야산에도 분포하고 있다. 2004년 진주시·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5개 지점에 분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1곳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359-29번지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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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기의 분묘군. 소곡리 유적은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기의 분묘군이다. 9기의 조선시대 묘가 조사되었는데, 봉분은 양호하게 남아 있는 상태이며, 1기 축조방식을 보여주며 형태도 비슷하다. 4호묘와 5호묘, 8호묘와 9호묘는 유구 축조방식과 유물 출토양상으로 보아 친연 관계의 묘일 가능성이 높다. 청동수저, 장도, 뒤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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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시목마을에 있는 생활유적. 오미리 시목 유적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건설예정 구간에 대한 구제발굴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전체유적 중에서 일부만 조사되었다. 조사결과 조선시대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하는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 묘 1기와 조선시대의 건물지, 기둥구멍군 등이 조사되었다. 오미리 시목 유적이 위치하는 곳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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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있는 선돌. 대천리 선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중엽 경 반촌[현 대동마을]에서 민촌[하촌마을] 방향으로 두 개의 돌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던 반촌마을의 처녀가 이를 발견하고 막대기로 마당을 치자 돌이 현 위치에 멈추게 되었다고 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242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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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의 공동목적으로 석재나 흙 등을 이용하여 축조한 전통건조물. 성은 흔히 성곽이라는 말과 혼용되고 있는데 성곽은 내성과 외성을 전부 일컫는 말이며 목책류의 결구로 해로운 동물이나 척을 방어하려는 데서 출발한 것으로 아군에게 유리한 지리를 얻고 적군을 불리한 조건하에 접근시키려는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다. 그러나 성의 축조는 군사적인 목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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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경상도 지방에서 낙동강 이서지역은 가야의 영역이었으며 이것은 서부 경상남도에서 거창, 산청, 진주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는 4세기경으로 편년되는 평면 타원형의 주거지의 분포 상황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가야의 영역이었던 낙동강 이서지역은 가야 후기에 이르러 영역의 변화를 겪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라 지방 통지조직 중 삼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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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방어산에 있는 산성. 고려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의 테뫼식 산성이다. 명칭과 관련하여서는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방어산성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1379년(고려 우왕 5) 봄에 왜적과 방어산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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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 남쪽에 위치한 보잠산 좌측 봉우리에 있는 산성. 축조 기법은 테뫼식으로 고려시대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성(石築城)이다. 보잠산성은 보령산성(寶嶺山城)으로도 불리는데, 문헌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 무명 산성으로서 산성이 위치한 보잠산의 명칭을 따라 보잠산성으로 불린다. 보잠산성에 대한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헌기록에서도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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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산성. 『진주목읍지』에 ‘성산성: 하나는 주 동쪽 44리에 있고, 토축이며 둘레는 2,814척이다. 하나는 주 서쪽 48리에 있고, 석축이며 둘레는 977척이다. 지금은 모두 무너졌다(城山城: 其一在州東四十四里土築周圍二千八白十四尺其一在州西四十八里石築周圍九白七十七尺今皆頹圯)’고 기록된 내용이 있으나, 성산성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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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 신북문에 축조된 옹성. 옹성은 철옹산성(鐵甕山城)의 준말로, 큰 성문을 지키기 위해 성문 밖에 작은 성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신북문 옹성은 진주성 전투에서 패한 뒤 축조된 진주성의 외성 중 하나이다. 진주성은 조선시대에 축성된 석축 평산성으로 원래 백제시대의 거열성(居列城) 터였다고 하며, 고려 공민왕 때에도 7차의 중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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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대곡리에 있는 산성. 송대산(일명 죽방산, 해발 311.5m) 정상부 및 송대산 북쪽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성이다. 2005년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행한 지표조사에 의하면, 전 송대산성은 석축의 테뫼식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긴 부정형이고, 산성의 총 둘레는 4㎞에 달한다. 또한 성 내부에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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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있는 성. 진주성은 남강에 면한 단애상에 축조한 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란삼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이 벌어진 곳이며, 1593년 6월 왜군의 재침 시에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곳이다. 진주성은 일명 촉석성(矗石城)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居列城)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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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공북문 성벽에 새겨진 글귀. 공북문 성벽 석각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의 북쪽문인 공북문(拱北門) 서쪽 성기에 새겨져 있는 글씨로 가로 80㎝, 세로 25㎝ 크기의 석재에 ‘康熙十九年山陰馬兵中哨泗川昆陽河東丹城咸陽六官一哨’라고 씌어져 있다. 이는 진주성의 수축을 담당하였던 구역의 표시를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축성 기록을 살펴보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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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에 있는, 의기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 1593년(선조 26) 6월 29일 임진왜란의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이 바위에서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하였다. 논개의 의열(義烈)을 상징하여 진주의 선비와 백성들이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고 명명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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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진주성의 북문. 진주성은 고려 말까지는 토성이었으나,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석성으로 수축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병사 김수와 이수일이 성을 증축하면서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게 되었고, 광해군 때 남이홍이 성을 증축하면서 11개의 포루를 설치하게 되었다.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어져 있던 진주성은 한일합방 이후 원형이 훼손되어 내외성의 구분이 사라졌으며,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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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귀부. 진주성 내에 있는 호국의 종각 남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 길이가 160㎝, 폭 140㎝, 높이 40~60㎝이다. 머리 부분에는 목 비늘이 새겨져 있고, 이빨을 조각하는 등 섬세하지만 등 부분에는 무늬가 없어 밋밋하다. 비좌의 크기는 75×15㎝이며, 귀부 자체는 4개의 발에 각각 발가락 3개씩, 그리고 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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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벽돌기단. 건축물의 기단부를 벽돌로 쌓은 것으로, 원래는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죽죽리의 폐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있는 진주성 내 박물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석 위에 일정 간격으로 높이 15㎝가량의 탱주(撐柱)를 세우고, 그 사이에 벽돌을 쌓은 다음 갑석을 덮었다.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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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혼들을 위무하기 위해 세운 단. 임진왜란 진주성 1차 전투(1592년 10월)에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비롯한 아군 3,000여 명이 왜군 2만여 명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물리쳤다. 이듬해인 1593년 6월 진주성 제2차 전투 때에는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충청도병마절도사 황진(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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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포진지. 진주성 포루는 진주성을 방어하는 포진지로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내성의 포루는 3곳이니 삼가, 의령, 곤양 등 3읍의 소속”이고, “외성의 포루는 9곳이니 진주, 단성, 초계, 거창, 사천, 함양, 남해, 합천 등 8읍 소속”이라고 하였다. 1607년(선조 40)에 김태허(金太虛)에 의해 진주성 내외성에 포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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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봉(熢: 횃불), 낮에는 수(燧: 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방법. 봉수는 전근대시대에 변경의 급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해당 지역의 영진(營鎭)에도 알려 적의 침략에 대비했던 통신제도로서 민간통신으로는 활용되지 못했고 단지 군사통신으로만 사용되었다. 봉수제의 유래는 오래된 듯하며, 중국에서는 25~27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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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덕곡리 산 1번지 정상부에 있는 봉수대. 광제산봉수는 조선시대 5거(距) 봉수노선 중 제2거 노선의 간봉으로 남쪽의 망진산봉수(望晉山熢燧)의 신호를 받아서 북쪽에 위치한 단성(丹城) 입암산봉수(笠巖山熢燧)로 신호를 전달하였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광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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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망진산에 있는 봉수. 『경상도지리지』(在州南七里許 南望泗川縣地城隍堂烽火 相距十八里五十九步 北望廣濟山烽火 相距二十五里二百八十步), 『세종실록지리지』(在州南 南准泗川城隍堂 北准廣濟山), 『여지도서』(在州南十里 南應泗川鞍峴 北報州廣濟 相距四十里)에 각기 기록되어 있다. 망진산봉수는 남쪽의 사천 안현산봉수(鞍峴山烽燧)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서 북쪽에 있는 진주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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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기와가마터.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의 장흥리에서 기와가마가 확인됨에 따라 ‘장흥리 와요지’라고 불린다. 장흥리 와요지의 조성시기와 기와 수급에 관한 문헌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발굴조사 당시 기와가마의 내부와 그 주변에서 출토된 기와 및 자기편을 통해 조선시대 초기에 조업이 행해졌던 유적으로 판단된다. 2001년 1월에 경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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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도자기 가마터. 효자리 가마터는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서 15~16세기 무렵 지방의 도자기 수급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5년 경주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하여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서 가마터의 흔적과 각종 도편이 쌓여진 퇴적층이 재확인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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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집현산 중턱에 위치한 절터. 임진왜란 후 응석사가 복원되기 전에 진묵대사(震黙大師)[1562~1633]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소재한 응석사의 왼쪽으로 집현산에 오르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집현산 중턱 해발 400m 정도 올라가면 내원암 사지가 있다. 1960년대까지 한국불교의 고승들이 수행하던 도량으로 알려져 왔으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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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219[용암길46번길 34-43]에 위치한 절터. 용암사지에 관한 정확한 문헌기록은 없다. 폐허지 위에 흩어져 있던 부조 및 석불좌상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옛 사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사찰이 건립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신라 말 연기(烟起) 도선(道詵)[827~898]이 성모천왕(聖母天王)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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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 장안리에 위치한 성전암 내에 있는 건물. 인조[재위 1623~1649]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성전암으로 피신하였는데, 국난 타개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성전암에서는 이것을 기리기 위해 인조대왕각을 세웠다고 전한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평면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한 전각 안에 인조대왕각과 산신각이 함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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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의 응석사에 있는 신라시대의 불전. 응석사 대웅전은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741[응석로 435]에 있는 응석사 안에 있는 불당으로 단층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유적건조물이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응석사의 석가모니불을 모셔 놓기 위한 불전으로 건립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집현산 계곡에 있는 응석사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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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월아산에 위치한 청곡사의 대웅전. 청곡사는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 1380년(우왕 6) 실상사의 상총대사(尙總大師)가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2년(선조 35) 계행대사(戒行大師)와 극명대사(克明大師)가 다시 중건하였고, 1612년(광해군 4) 다시 대웅전을 비롯하여 사찰 전체를 중수하였다. 조선 말기 포우대사(布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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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의 청곡사에 있는 업경전(業鏡殿). 청곡사 대웅전 옆에 있으며, 명부전(冥府殿) 또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불린다. 879년(헌강왕 5)에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청곡사는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 다시 세워졌다. 이후 조선 말기 포우대사(布雨大師)가 다시 대웅전을 비롯하여 사찰 부속건물들을 중수하였다. 청곡사 업경전도 청곡사를 세울 당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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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누각. 현판에는 진남루(鎭南樓)로 되어 있으나, 진주성의 북쪽에 위치하여 북장대로 불린다. 또한 내성의 북쪽 끝에서 내성과 외성에 주둔한 병사 모두를 지휘할 수 있어 공북루(拱北樓)라는 별칭이 생겼다. 1584년(선조 17) 목사로 부임한 신점(申點)이 처음으로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167번지 진주성 서북쪽의 높은 언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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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서쪽에 위치한 누각. 진주성(晋州成) 서문(西門)의 지휘장대이다. 장대는 지휘하는 사람이 올라서서 명령하는 대를 가리킨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214-4번지에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회룡루(回龍樓)로 기록되어 있으며 규모는 작았으나 촉석루와 같은 다락집이었다고 되어 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건물은 허물어지고 1934년 독지...
사당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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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초등학교 구실을 하던 서당의 이름. 한국의 초등학교 역사는 초등수준의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보면 고구려의 경당(扃堂),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서당(書堂) 등을 기원으로 삼고 있다. 근대적인 학교제도로 발달한 것은 갑오개혁 이후의 일로, 1883년 원산학당이 설립된 이후 1895년 서울의 수하동소학교(水下洞小學校)·장동소학교(壯洞小學校)·정동소학교(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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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재. 동면서재는 1566년(명종 21)에 박승임(朴承任)[1517~1586]이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동서남북 각 면에 서재(書齋)를 설치하였는데, 그중에서 문산면 서지골에 세운 것을 말한다. 박승임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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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신풍리에 있는 창원황씨(昌原黃氏) 재실. 동산재는 1680년에 창원황씨 문중에서 건립한 것으로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제를 지낸다. 내부에는 황석기(黃石奇), 황상(黃裳), 황준(黃濬), 황윤의(黃允義), 황우(黃瑀), 황여필(黃汝弼)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된 재실이다. 창원황씨의 경우 시중공파·소장공파·공희공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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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초문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방어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에서 방산재로 부르게 되었다. 1967년에 재령이씨 이상열이 선조의 별세 후에 이 재실을 지었다. 그의 선조는 신의가 두텁고 가풍을 중시하는 점에서 향리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이들이었다. 또한 명리보다는 의리를 중시하였고, 이웃사람들과 잘 지내는 다정다감한 성품도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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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서재. 북면서재는 1566년(명종 21)에 박승임(朴承任)[1517~1586]이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동서남북 각 면에 서재(書齋)를 설치하였는데, 이중에서 집현면에 세운 것이 북면서재이다.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 반남(潘南), 자 중포(重圃), 호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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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고분군의 분묘 옆에 세워져 있는 재실. 영모재는 단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1454]을 기리고 있다. 정분은 본관이 진주(晋州)로 자는 자외(子畏),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며,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1856년 가을에 진양정씨 종중의 논의를 거쳐 재실을 짓기로 합의하여 정분의 묘소 동편 옆에 중건하였다. 재실을 짓게 된 간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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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서재.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조좌랑 등을 거쳐 정언(正言)을 지내고, 소윤(小尹)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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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봉대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1986년에 이현도·이현금이 지은 목조기와형 건축물이다. 이서규의 호를 따서 송강재라 부르게 되었다. 이서규는 학행과 효행이 모범적이어서 마을 사람들의 칭찬을 들은 처사였는데, 그의 후손들이 선조의 모범적인 삶을 이어받고 기리기 위하여 건축한 재실이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성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넉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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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거곡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1976년에 지은 목조기와형 재실이다. 조상 묘의 소재지인 송현과 독계의 이름을 따서 송계재라 이름을 지었다. 재실을 지은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기문이 없어 이종호가 기문을 붙였다. 선조들의 덕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후손들이 힘을 모아 세우게 된 것이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성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넉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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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거곡마을에 있는 재령이씨 재실. 이병기가 그의 9대조인 이형규의 덕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1984년에 건립한 재실이다. 이형규는 영명하고 지혜로움이 뛰어나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의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오래 그 관직에 있지 아니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수신에 힘쓴 사람이었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성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넉넉한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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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연계안(蓮桂案) 보관소. 연계재는 연계안을 보관하는 서재를 말한다. ‘연계’는 연방(蓮榜)과 계적(桂籍 : 문과 합격)의 첫 글자를 모아 지은 명칭으로, 연(蓮)은 사마시에 오른 사람을, 계(桂)는 문과에 오른 사람을 지칭한다. 1736년(영조 12) 사마소(司馬所)를 설립하고 생원진사시 합격자 명단을 보존하였다. 1841년(헌종 7) 문과 합격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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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초문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1987년 초문마을에 살아 온 재령이씨 후손들이 선조들의 덕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세운 목조기와형 재실이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성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넉넉한 음식을 차려 놓아도 후손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모아 재를 세우는 일을 하였는데, 이러한 일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떳떳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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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서재.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조좌랑 등을 거쳐 정언(正言)을 지내고, 소윤(小尹)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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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1920년 청원마을에 삶의 터전을 닦아 온 재령이씨의 후손들이 지은 목조기와형 재실이다. 선조들의 덕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후손들이 힘을 모아 건립하였다. 청원마을은 재령이씨가 300여년을 세거하던 땅이다. 고전적인 기와집 안채와 바깥채 2채로 건축하였으며, 방의 주변에 마루가 둘러져 있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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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이 정자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이며, 1853년에 건축된 목조기와형 재실이다. 맑은 계곡을 끼고 있어서 청계재라 부른다. 쳥계재는 건축 당시에 3간이었으며 그 뒤에 5간으로 증축되었다. 그 후에 이 재실의 뒤에 서실을 짓고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고전적인 기와집 형태로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방과 대청마루가 있고,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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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사당. 진주하씨의 사우로서, 하즙(河楫)·하윤원(河允源)·하자종(河自宗)·하계종(河啓宗) 등 4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하즙은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고, 진천군(晋川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를 원정(元正)이라 하였다. 그 아들인 하윤원은 충혜왕 말년에 등제하여 경상, 서해의 안찰사를 지내고 원주와 상주의 목사를 역임하였는데, 이르는 곳마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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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사우. 고려 초 거란에 끝까지 대항하다 순절한 충신 하공진(河拱辰)[?~1011]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1804년(순조 4) 수곡면 사곡리 낙수암(落水菴)에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향사를 일시 중지하였으며, 1869년 부조묘(不祧廟)로 되어 다시 자손 봉사하게 되었다. 하공진 장군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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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에 있는 사당. 공자(孔子)를 모시는 사당으로, ‘궐리’는 중국 산뚱성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가 태어나서 살던 궐리촌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진주 이외에 충청남도 논산시의 노성(魯城)[충남기념물 제20호], 경기도 오산시의 궐동[경기도 기념물 제147호] 등에 공자의 사당인 궐리사가 있다. 노성궐리사는 1716년(숙종 42)에 권상하·김만준·이건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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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에 있는 재실. 공자를 중심으로 주자와 안자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1889년에 창설하여 공자를 주벽(主壁)으로 주자를 배향(配享)하고 안자를 종향(從享)하고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8월 27일 공부자 탄신일에 제향(祭享)을 행하고 있다. 원래 대평면 하촌리 547-2번지에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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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에 있는 사당. 진주정씨의 사우로서, 정예(鄭藝)·정시양(鄭時陽)·정유(鄭裕)·정수균(鄭守均)·정홍차(鄭洪且)·정안사(鄭安社)·정수(鄭需)·정을보(鄭乙輔)·정이오(鄭以吾)·정황(鄭璜)·정분(鄭苯) 등 11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이들 11위 중 진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이오, 정분 부자로, 정이오[1354~1434]는 고려 공민왕대에 나서 세종대까지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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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 있는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모시는 사당. 강이식 장군은 진주강씨의 시조로, 고구려 영양왕 9년(598) 임유관(臨楡關) 전투와 612년(영양왕 23)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대군 30여만 명을 섬멸시킨 명장이다. 950년 고려 광종은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의 구국충절을 기려 봉산사를 건립하고, 매년 한식날에 제사를 모시게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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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있는 강민첨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산앙사(山仰祠)에 봉안된 강민첨(姜民瞻)[?~1021]은 진주(晋州)가 본관으로 목종 때 문과에 급제, 1012년(현종 3)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격퇴하였다. 1018년 거란[契丹]이 1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강감찬(姜邯贊)의 부장(副將)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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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고려 장군 강민첨(姜民瞻)의 사당. 강민첨은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옥봉동의 강민첨 탄생지는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는데,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1980년대에 사당과 정문, 그리고 재실을 신축, 정화하였다. 은열사는 강민첨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으며, 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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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의기 논개(論介)의 사당. 의기사는 1721년(경종 원년) 경상우병사로 부임한 최진한이 진주지역민 등의 요구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근거로 논개에 대한 포상을 조정에 건의하였고,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건립되었다. 1779년(정조 3)에 경상우병사 홍화보(洪和輔)가 낡고 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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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재령이씨의 정사(精舍). 미암공(薇庵公)의 아들 이종호·이일호가 선친을 기리기 위해 1938년에 목조기와형으로 지은 수학(修學)과 수행(修行)의 장소이다. 청원마을의 한 지명인 죽동을 따라 죽동정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종호와 이일호가 지은 목조기와형 수학 수행처이다. 미암공은 학문에 독실하고 의리 있는 행동을 중요시하는 선비여서 마을 사람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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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사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등 39위와 모든 군졸의 신위를 안치하기 위하여 1595년 경상감사 정사호(鄭賜湖)가 건립하였다. 1607년 창렬사라 사액되었고, 1712년(숙종 38) 병사 최진한(崔鎭漢)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김시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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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수면 청원리에 건축했던 사당. 이 사당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이며, 조선시대에 건축되었던 사당이었으며, 고종시에 철폐되어 현재 복건사업이 진행 중이고, 비석이 남아있다. 성종시의 명신인 홍문관 부제학 이관재와 그 후손인 행와 행정을 배향하여 제사지내던 사당으로 조선시대에 건축되었다. 그 후 고종시에 이 사당이 철폐되었는데, 후손인 이기환이 이 사실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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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었던 사우.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신위를 모시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김시민의 신위는 창렬사(彰烈祠)주벽에 옮겨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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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117[용암길 59-2]에 있는 사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본래 귀곡동에 있었는데, 1995년 남강댐 공사로 인하여 현재의 장소로 이건하였다. 정문부는 호가 농포(農圃)로, 함경도 경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길주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그 전공으로 길주목사가 되었다. 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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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진주향교에 속한 건축물. 9동으로 구성된 진주향교의 건축물 중 하나로 1986년 중건되었다. 진주향교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987년(고려 성종 6)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鄕學堂)으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011년(현종 2) 중수 및 서재를 중건하고 수학원(修學院)·학사(學舍)·서재(書齋)·사교학당(四敎學堂) 등으로 개칭하였다. 1398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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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관청 건물. 원래 관찰사는 각도에 1명씩 임명했던 조선시대의 지방장관(종 2품)을 말하는데 관찰사를 다른 말로 ‘감사’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관찰사가 있는 관청을 ‘감영’이라고 했다. 경상도관찰사는 조선시대 내내 대구(달성) 등 경상북도에만 주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상남도에는 없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 경상도가 남북으로 나눠진 후 관찰사가...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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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목조기와 형태로 된 정자. 이 정자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이며, 청계(淸溪) 이세후(李世垕)가 1902년에 목조기와형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곳에 있는 정자라 하여 계상정이라고 칭한다. 이세후가 관직생활 중 다른 여러 관료들과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이견이 발생하자,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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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정훤(鄭暄)이 광해군의 폭정에 휩쓸리기 싫어 향리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세웠다. 정훤은 1583년(선조 16)에 합천에서 출생하여 문장과 덕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인조 때 조정에서 조봉대부(朝奉大夫), 영산현감(靈山縣監)으로 천거하였으나 고사하고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산 131번지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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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담리에 있는 정자 조선 중기의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 700명을 이끌고 공을 세운 관란(觀灡) 허국주(許國柱)가 난이 끝난 후 청담리 염창나루 가에 이 건물을 짓고 은거하였다. 『속진양지』에 의하면, 허국주는 일찍 무과에 급제하여 우후(虞侯)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을 닥치는 대로 쳐부수었다. 1812년(순조 12) 고장의 선비들이 임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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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재령이씨의 정자. 1941년 이기환이 지은 목조 기와형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만수정(晩修亭)이란 이름은 뒤늦게 인격을 수양한다는 시의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기환은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이 재실을 짓게 되었는데, 그의 선조들은 근면, 빈객 맞이, 그리고 제사 등에 있어서 향리사람들로 칭송을 받는 이들이었다. 또한 명리 보다는 의리를 중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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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에 있는 재실. 진양하씨로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하천서(河天瑞)와 하경호(河慶灝) 부자의 재실이다. 하천서의 호는 망추(望楸), 하경호의 호는 읍추(泣楸)로, 하천서의 호를 본떠 망추정이라 하였다. 하천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군대를 훈련시키고 허물어진 진주성을 수축하고 못을 깊이 파서 장차를 대비하였다. 후에 임진왜란 때의 공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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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加芳里)에 있는 조선 중기의 누각(누정) 건물.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慶尙右道)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닦던 장소였다. 부사정(浮査亭)의 ‘부사(浮査)’는 부사 또는 야로(野老)로 불려지던 성여신(成汝信)[1546~1632]의 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성여신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야로로 남명 조식(曺植) 선생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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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정자. 어려움에 대처하는 지사의 뜻과 기상을 말하는 점에서 세한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1924년에 재령이씨 이성률(李聖律)의 백부인 청호처사(淸湖處士) 이씨가 지은 목조기와형 건축물이다. 청호는 문장에 집착하는 선비가 아니고 평소 덕행에 힘쓰는 인물이었으며, 세한정은 생전에 학문과 덕행을 닦는 서실로 지었다. 추운 겨울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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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있는 재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병마절도사 겸 안주목사, 오위도총부총관을 지낸 허동립(許東岦)[1601~1662]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1710년(숙종 36)에 후손들이 힘을 모아 지은 건물이다. 평소 연(蓮)을 좋아하여 후손들이 대문 밖 뜰에 못을 파고 연을 심어 연당(蓮塘)이라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807년(순조 7)에 중수한 것이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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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에 있는 서재. 우곡정은 고려 말의 문신 우곡 정온(鄭溫)이 은거하였던 곳이다. 정온은 진주정씨로 대사헌을 지냈으며,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두문동과 지리산 청학동에 은거하다가 조선 태조 2년(1393) 이곳 진주에 서재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우곡정이라 하였다. 정온은 앞뜰에 못을 파고 백일홍나무 여섯 그루를 심고 불사이군(不事二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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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정자. 이이로(李彛老)가 증조부 송재공(松齋公)을 위해 지은 목조기와형으로 지은 정자이다. 손자인 이기환이 후에 이건하여 현재의 위치에 이 정자를 두었는데, 초기에 건축한 장소가 가파르고 땅이 비좁아 불편한 점이 그 이유였다. 후손들이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마하고 심신을 수양하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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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봉면 봉곡리에 있는 정자. 이 정자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초문마을이며, 1986년에 건축된 목조기와형 재실이고, 제사 회의 강학 등의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청사 이선생의 호에 따라 청사정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랜 전에 청사정사가 있었는데, 3백년이 지나자 다시 손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에 후손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3간으로 재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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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가선리 선동마을에 있는 청주한씨의 정자. 『진주누정지』에 의하면 1919년에 처음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 외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가선리 선동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위치한다. 외삼문 1동, 재실 1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흙과 돌을 섞어 만든 담을 둘렀다. 외삼문은 목조구조를 기본으로 하며 벽체는 적색 벽돌로 마감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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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목조기와 형태의 정자. 1885년에 이중광이 건립한 것으로, 이중광의 호를 따라 행정(杏亭)으로 불린다. 행은 복숭아와 은행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로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가르친다는 말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학문교육의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다. 행정 이중광은 인목대비 폐모론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당시 관직에 있었다. 비록 의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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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의 비봉산에 있는 누각. 비봉산 아래에 위치하여 비봉루라는 명칭이 붙여졌을 것이라는 추측 뿐 별 다른 명칭유래는 없다. 비봉루는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장구지소(杖求之所: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여서 정몽주의 후손인 정상진이 1939년에 누각을 지은 것이다. 비봉루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7-1[창렬로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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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경상남도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였던 관아 영남포정사의 정문. 조선 광해군 10년(1618) 병사를 지내던 남이흥이 내성의 동쪽문을 고쳐 세우고 옆에 대변루(待變樓)를 새로 지었는데, 이것이 망미루의 본래 건물이다. 후에 1895년(고종 32)에 전국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시행됨에 따라 진주부가 설치되면서 진주관찰부의 선화당 관문이 되었다. 1896년에 전국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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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누각. 호정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矗石樓記)」에 의하면 남강 가에 뾰족뾰족한 돌들이 솟아 있는 까닭에 그 모습을 따서 누각의 이름을 촉석루라고 지었다고 하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촉석산에서 돌을 캐다가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진주성의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고도 불린다. 전자의 남장대라는 이칭에서는 지...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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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반야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강혼의 묘. 강혼(姜渾)[1464~1519]은 조선 중기의 이름난 문장가로 김일손(金馹孫)과 더불어 당대에 이름을 날렸다.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였고, 시로써 연산군에게 아부하여 사림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반야동의 진주 강씨 선영에 위치해 있다. 배위(配位) 정경부인 박씨 묘와 더불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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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및 의병장인 고종후(高從厚)의 묘. 고종후[1554~1593]의 호는 준봉(準峯), 본관은 장흥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1593년 진주성전투에서 활약하다가 진주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순절했을 당시 시신은 이미 유실되어 묘(墓)가 없었다. 지금 남아 있는 무덤은 1619년(광해군 11)에 윤허를 받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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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에 있는 서씨의 입향조(入鄕祖)인 서이언의 묘. 서이언(徐而彦)[1702~?]은 조선 숙종~영조 연간에 걸쳐 살았던 인물로, 비문에 의하면 숙종 28년 임오년에 태어난 기록은 있으나 몰년 기록은 없다. 수직(壽職)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의 품계를 받은 달성서씨의 입향조이다. 묘소는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 향교부락에 있는 서씨 문중 재실인 숭모재(崇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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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진주농민항쟁을 이끈 유계춘(柳繼春)[?~1862]의 묘. 유계춘은 경상남도 진주시 원당면(元堂面) 원당촌(元堂村) 출생이다. 그는 환곡(還穀), 포흠(逋欠) 등 각종 폐단을 지적하며, 1862년 대대적인 농민항쟁을 일으켰다. 유계춘이 이끈 농민군은 수만 명으로 불어났고, 농민을 수탈하던 향리 4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하고, 아전이나 부호의 집이 불탄 것이 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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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정양의 묘. 윤정양(尹廷揚)은 조선 인조 때 조산대부행장수현감사천진병마동첨절제사지사천현사권농관(朝散大夫行長水縣監泗川鎭兵馬同僉節制使知泗川縣事勸農官)에 오른 인물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 죽산마을 서편 야산에 동남향하여 있다. 봉분은 사각 방형 석조분으로 봉분 중앙에 상석과 연꽃이 조각된 사각 향로석이 있다. 봉분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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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기(鄭其)의 묘. 정기는 조선 전기의 학행이 출중한 징사(徵士)였으며, 진주 옥봉에 살았다. 한성소윤과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고 호조정랑을 지냈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오미마을에 위치한다.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고, 사각 석함이 원형 그대로이다. 석함 앞면에 주인공의 행적을 새겼으나 마멸이 심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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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한 고려 말~조선 전기의 무신인 정설(鄭舌) 부부의 묘소. 진주시 서쪽 석갑산(石岬山) 북사면에 축조되어 있는 조선시대 방형분(方形墳)으로 둘레돌에 고분의 축조시기와 피장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진주정씨(晋州鄭氏) 공대공파(恭戴公派)의 파조(派祖)인 정척(鄭陟)의 아버지 정설(鄭舌)과 부인 강씨(姜氏)를 합장한 무덤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 산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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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하경복의 묘. 하경복(河敬復)[1377~1438]은 본관이 진주로, 1402년(태종 2)에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시부정(司僕侍副正)을 지냈고, 1410년 다시 무과중시에 급제한 후 함경도 경성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국경 수비에 힘썼다. 이후 함경도절제사 등을 지내며 15년간 변경지역 수비에 만전을 기하였으며, 만년에 경상도병마절제사를 지냈다.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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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가봉리에 있는 하계지(河繼支) 처 상산박씨의 묘. 상산박씨(商山朴氏)[1424~1490]는 통정대부행거제현령(通政大夫行巨濟縣令) 하계지의 아내이며,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1452~1500]의 어머니이다. 묘소는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가봉리 산 60번지 우봉마을 뒤 하씨 선산에 있다. 원형 봉분으로 봉분 중앙에는 상석과 사각향로석이 있고, 묘의 오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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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하연(河演)의 묘. 하연의 본관은 진주,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376년(고려 우왕 2)에 태어나 일찍이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365년(조선 태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판서·대사헌·대제학·형조판서 등을 지내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1449년(세종 31) 영의정에 올랐다. 문종이 즉위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있다가 1453년(단종 1...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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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 진산마을에 있는 강권수의 효행을 기리는 비. 손가락을 잘라 병든 아버지를 간호한 강권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 진산마을 가마고개 도로변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36㎝, 너비 39㎝, 두께 18㎝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글자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비의 제목은「처사진양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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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강대수(姜大遂)의 선정비. 1642년(인조 20)~1643년 동안 진주목사를 지낸 강대수의 덕행과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위치한 은열사(殷烈祠) 내에 위치한다. 귀부 위에 높이 205㎝, 너비 73㎝, 두께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사각형으로 앞면에는 여의주를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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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강맹경의 신도비. 강맹경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이다. 1410년(태종 10)에 태어나 1429년(세종 11)에 중시문과에 급제한 후 우부승지·도승지를 지냈다. 1453년(단종 1) 이조참판으로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왔고, 1455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좌익공신 2등에 책정되고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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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 있는 남원양씨 효행비. 남원양씨는 어머니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키는 등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강수제(姜壽齊)에게 시집간 후로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었으나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셨고, 아들을 장가보낸 뒤에는 자신의 일은 다 마쳤다고 여겨 약을 먹고 숨을 거뒀다. 이와 같은 행적을 기리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원래는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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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에 있는 김해김씨의 효행과 열행(烈行)을 기리는 비. 김해김씨의 손자 김위중(金渭中)이 할머니의 효행과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마을 동쪽 입구 지방도변에 남향하여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에 높이 145㎝, 폭 50㎝, 두께 18㎝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문은 풍화로 인하여 몇 글자는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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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에 있는 진양하씨의 열행비. 진주의 유생 김동철(金東喆)에게 시집간 진양하씨는 문충공 하륜(河崙)의 후손으로, 남편이 병에 걸려 위독한 상황에 처하자 자신의 무릎 살을 베어 먹여 소생시키는 등 정성껏 간병했다. 이 일이 알려져 진양하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의 양들 공군교육사령부 후문 입구의 도로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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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하촌리에 있는 원주원씨의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열녀비(烈女碑). 열부(烈婦)인 원주원씨를 기리는 비로 그녀의 손자 김두연과 집안사람 김억조가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하촌리 가좌부락을 조금 벗어나 대곡면으로 가는 지방도 옆에 동향으로 있다. 사각의 받침돌 위에 높이 135㎝, 폭 46㎝, 두께 16㎝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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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 창렬사(彰烈祠) 내에 있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 등에게 내린 사제비. 김시민은 본관이 안동이며, 자는 면오(勉吾)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 대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불과 3,800명의 병력으로 7일 간의 공방전 끝에 적 30,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격퇴시켰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그러나 김시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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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김시민(金時敏)의 공적을 기리는 비. 김시민[1554~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시민 장군 전공비는 1619년(광해군 11)에 진주 지역 백성들의 열망에 의해 세워졌다. 성여신의 문집인 『부사집(浮査集)』에는 ‘진주목사김공전성각적비명(晋州牧使金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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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 삼구부락 입구에 위치한 수원백씨의 효열비(孝烈碑). 김용봉의 처 수원백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고 있다. 1918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지나는 사람들에게 효(孝)와 열(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수원백씨의 효행과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남편 김용봉은 동몽교관으로, 수원백씨는 숙부인으로 증직(贈職)되었다. 향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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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온수리 장곡마을에 있는 효행비. 김응문은 아버지가 중병이 들자 갖은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이와 같은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김응문의 처 거창유씨도 시아버지가 혼절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먹여 소생시키는 등 김응문에 못지않게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깅응문은 동몽교관 겸 예조정랑이란 벼슬이 내려졌고, 부인 거창유씨에게도 정려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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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주목사를 지낸 김이위(金履緯)의 선정을 기리는 비. 조선 순조 때 진주목사(재임기간 1829~1832)를 지낸 김이위(金履緯)의 청정거사비(淸政去思碑)를 아들인 진주목사(재임기간 1877~1878) 김온순(金蘊淳)이 세운 것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에 위치하고 있다. 납작한 형태의 귀부 위에 석주를 세우고 가운데 비석이 위치하고 있으며, 단순한 형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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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향양리에 있는 초계정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비. 초계정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시동생 김석규(金錫圭)가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향양리 개심마을 마을회관 옆 지방도로 변에 남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에 높이 128㎝, 폭 47㎝, 두께 19㎝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의 제목은 ‘유인초계정씨효열비(孺人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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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에 있는 김종립 처 경주최씨의 열행비. 경주최씨는 남편 김종립이 병에 걸리자 주저 없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이는 등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간호하여 소생시켰으나, 정작 자신은 그로 인해 고생하다 죽었다. 그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 진산마을의 가마고개 도로변에 위치한다. 사각형 받침돌 위에 높이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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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갈곡리에 있는 진양하씨의 효부비. 진양하씨의 큰아들 김훈태(金薰泰)가 어머니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1937년에 세웠다. 비문은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주인공의 효성을 기리는 내용과 건립경위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갈곡리 부락 입구 지방도 변에 동북향(東北向)하여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35㎝, 폭 51㎝,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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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 내에 위치한 김종일의 선정을 기리는 비. 1630년 진주판관을 지낸 노암(魯庵) 김종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630년 당년에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 진주성 내 비석군에 위치하고 있다. 1973년에 진주성 내로 옮겨왔다. 높이 149㎝, 폭 78㎝, 두께 18㎝이며 정방형의 비신 위에 크고 섬세한 이수(螭首)를 이고 있다. 비의 제목은 ‘通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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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 진산마을에 있는 김종팔 형제의 효행비. 김종팔은 어머니 전씨가 매우 중한 병에 걸려 사경을 헤메고 있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게 하여 소생시켰다. 또한 동생 김종오도 아버지 김영곤이 병들자 형과 똑같이 행동하여 아버지를 간병하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 진산마을의 가마고개 도로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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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에 있는 효적비. 유인 남원양씨가 시아버지에게 행한 효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효행내용을 기록하여 두문마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두문마을 산기슭에 위치한다. 비좌는 방형이고 비수는 한옥와가 형태의 가첨석인데, 방형의 받침돌 사방에 석주를 세워 대형의 비수를 받치고 있어서 마치 보호각의 역할을 겸하도록 하였다. 비문은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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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효열비. 방형의 비좌에 비신을 세우고, 비신 양옆으로 석주를 세운 다음 가첨석을 얹었다. 비문은 한문으로 지었는데 그 내용은 증가선대부호조판서 황우수의 딸인 유인 회산황씨가 김해인 김평린에게 시집와 시부모의 병구완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인 지극한 효행을 행한 것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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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신갈리에 있는 효행비. 지극한 효성으로 동몽교관이 된 창원황씨 황섭(黃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신갈리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47㎝, 너비 58㎝, 두께 19㎝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신에 비해 머릿돌이 매우 커서 사방에 받침기둥을 마련하였다. 글자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비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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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창렬사에 배향된 배위에 대한 내용을 새긴 석비.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한 기록이므로 ‘동배서배비’라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제1차 진주성전투(진주대첩)와 제2차 진주성전투(계사년 전투)에서 순국한 인물들 39기의 위패 중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해 1833년(순조 33) 임금이 위무의 글을 지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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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신 유홍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유홍림은 본관이 진주로서, 고려 말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호부상서를 지냈다고 전한다. 유홍림이 태어나고 또 벼슬을 그만둔 후 내려와 살던 터에 유홍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내리 원당마을에 위치한다. 비에는 ‘高麗尙書柳公(고려상서류공)’이라는 글체가 희미하게 보인다. 본래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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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효자인 모순(牟恂)의 정려비. 모순은 진주모씨로 호는 절강이다. 조선 1417년(태종 17)의 식년친시(式年親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사간원의 사간을 지냈다. 세조 때 진주로 와 살았다. 일찍이 효행이 지극하였는데, 모친상을 당하여 상여가 강을 건너지 못하자 하늘에 통곡하니 흐르는 물이 중단되었다. 마침내 강을 건너 장례를 치렀고, 이 때문에 호를 절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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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죽곡마을에 있는 비. 밀양손씨가 남편 김영성이 학질에 걸리자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먹이는 등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간호하여 소생시킨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죽곡마을의 입구 도로변에 위치한다. 사각형 받침돌 위에 높이 137㎝, 너비 46㎝, 폭 20㎝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대형의 머릿돌을 얹었다. 받침돌 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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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저동마을에 있는 박승유(朴承裕)의 효행을 기리는 비. 아버지가 병이 들어 혼절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이는 등 정성으로 간호하였고,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근신하면서 머리를 빗지 않았다고 하는 박승유의 효행을 기념하여 아들인 박정승(朴靜乘) 등에 의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저동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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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효자리에 있는 광산김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광산김씨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박종래(朴宗來)가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효자리로 들어가는 효자교 부근 진주~합천간 지방도 옆에 남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에 높이 153㎝, 폭 55㎝, 두께 37㎝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의 제목은 “효부광산김씨지려(孝婦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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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덕곡리에 있는 비. 경주최씨가 남편 서치담(徐致淡)이 중한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이는 등 온갖 정성으로 남편을 간호한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사각형 받침돌 위에 높이 107㎝, 너비 76㎝, 폭 12㎝의 몸돌을 세웠다. 머릿돌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특이하게 몸돌의 윗부분 모서리를 각을 내어 뾰족하게 처리하였다. 비의 제목은 ‘열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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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진주목사 성이성(成以性)의 선정을 기리는 비. 성이성은 본관은 창녕, 호는 계서(鷄西)이다. 인조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진주목사로 있을 때 어사 민정중(閔鼎重)의 보고로 선정이 조정에 알려졌다. 후에 청백리로 뽑혔으며 사후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1657년(효종 8)부터 이듬해까지 진주목사를 지낸 성이성[1595~1664]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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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진주 병사 겸 목사 신경원(申景援)의 선정을 기리는 비. 신경원[1581~1641]의 본관은 평산, 자는 숙헌(叔獻)이다. 1605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 패전한 관군을 수습하여 반군을 대파함으로써 진무공신(振武功臣)으로 녹훈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분전하다가 적의 포로가 되어 단식 항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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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이곡리 어수마을 입구에 있는 신명천 처 함안조씨의 열행을 기록한 비. 함안조씨는 남편 신명천과 자식이 일찍 죽었으나 평생을 수절하였다. 그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이곡리 어수마을 입구에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40㎝, 너비 48.5㎝, 두께 18.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몸돌에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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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 있는 사회운동가 신현수의 공덕을 기리는 비. 1932년 사회적으로 천시를 받던 백정들이 형평사 설립에 앞장서 백정들의 인권을 위해 힘쓴 신현수를 기리기 위해 송덕비를 세웠다. 원래 이 비석은 1932년 섭천못 주변에 세워졌다. 당시 섭천못 주변은 백정들이 집단적으로 살았던 장소였다. 그러나 해방 후 1960대 말 섭천못은 흙으로 메워졌으며, 그 자리에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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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제말(諸沫)·제홍록(諸弘祿)의 공을 기념하는 사적비. 제말[?~1592]은 경상남도 고성 출신의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웅천·김해·정암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워 성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전투에서 전사하였는데,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대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제홍록[1558~1597]은 제말의 조카로서, 1581년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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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잃은 관인(官印)을 다시 찾아 세운 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가 병마절도사 관인을 안고 남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이후 1747년(영조 23) 이 도장을 남강 물속에서 건져 당시의 병사 최진한(崔鎭漢)이 조정에 아뢰었다. 도장에는 ‘慶尙右道兵馬節度使印(경상우도병마절도사인)’이라 새겨져 있고, 158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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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천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부인을 기리는 효열비. 김해김씨의 아들 홍영대가 어머니의 열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1862년에 세웠다. 옛 비석이 풍화되어 글씨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자 1996년에 김해김씨의 후손인 홍학석이 그 옆에 새로운 비를 만들어 현재 나란히 서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천곡리 천곡마을 앞산 기슭에 동북향하여 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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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에 있는 열부 밀양박씨의 행적을 기리는 비. 황기찬의 처 밀양박씨는 남편이 전라도 지방에 나갔다가 죽자 스스로 남편의 시신을 옮겨와 고향에 묘를 마련하고, 부지런히 일해 자식들을 훌륭히 키웠다. 그 열행을 기리기 위해 자손들이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 함촌마을의 입구 도로변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42㎝, 너비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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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반지리에 있는 비. 문보현(文寶鉉)의 처인 안동권씨가 시부모에게 행한 효행과 남편에게 행한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받침돌은 드러나 있지 않아 명확히 알 수 없고, 몸돌은 높이 143㎝, 가로 58㎝, 폭 15㎝로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특이한 점은 몸돌 좌우로 장방형의 판석을 세워 머릿돌을 받치고 있다. 비의 제목은 ‘효열부유인안동권씨지비(孝烈婦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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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있는 열녀 전주유씨의 정려비. 강엄의 처 전주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35㎝, 너비 56㎝, 폭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몸돌의 좌우에는 장방형의 받침돌을 덧붙여 머릿돌을 받치게 설치하였다. 비문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비의 제목은 「열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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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열녀 파산이씨를 기리는 비. 남편이 일찍 죽자 평생을 수절하며 시부모와 시조모를 공경한 파산이씨의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정골소류지 부근의 도로변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20㎝, 너비 40㎝, 폭 12㎝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의 제목은 「열부사인재령이중환처파산이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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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상미리 기전에 있는 효자비.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한 상황에 놓이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게 하는 등 정성으로 간호한 오철상의 행적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경상남도 미천면 상미리 기전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귀부를 얹고 높이 134㎝, 너비 47㎝, 두께 15㎝의 몸돌을 세우고, 몸돌 좌우에 장방형의 판석을 세워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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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진주병사 윤선정(尹先正)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윤선정의 본관은 파평, 자는 은로(殷老)로, 1611년부터 1613년까지 진주병사를 지냈다. 윤선정이 진주병사 재임 중 병사를 사랑하며 선정을 베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진주병영 군졸들이 1614년(광해군 6)에 세운 유애비(遺愛碑)이다. 지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뚜껑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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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암리에 있는 비. 김춘식의 처인 은진송씨가 부모님께 행한 효행과 남편에게 행한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45㎝, 폭 18.5㎝, 가로 44㎝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올렸다. 비문은 다른 비문과는 달리 몸돌에 장방형으로 비문을 새길 부분을 파서 그 속에 새겨놓은 점이 특징이다. 비의 제목은 ‘은진송씨효열비(恩津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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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의기(義妓)인 논개의 우국충정을 기리는 비. 조선 중기의 기생 논개는 진주목의 관기(官妓)로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하였다. 논개의 충절을 기념하기 위해 1721년 봉작 하사 및 사당 건립 등이 추진되었다. 이후로도 1740년(영조 16)에 의기사(義妓祠)가 세워지는 등 논개를 추모하는 사업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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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부락에 있는 이기의(李琦儀)의 선정비(善政碑).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 이기의(李琦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선정비(善政碑)로 1847년 12월 안간역(安磵驛) 주민들이 건립하였다. 1980년 진주-합천간 도로를 확포장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자리(미상)에서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부락 북서쪽 어귀 진주-합천 간 도로변으로 옮겨졌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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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방촌리 등건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의병 이도량의 신도비. 이도량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이명걸을 도와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순국하였다. 증자헌대부공조판서(贈資憲大夫工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신도비에는 임진왜란 때의 활약상을 기록해 놓았다.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방촌리 등건마을의 학교 앞 대나무밭에 나란히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51㎝, 너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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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의 일본인 교장 이마무라의 송덕을 기려 세운 비. 일본인 이마무라 다다오[금촌충부]는 1925년 5월 8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진주농업학교(후의 진주산업대학교)에 교장으로 재임하였다. 1937년 6월 12일 진주농업학교 교정에서 경상남도지사와 하동군수 등 기관단체장과 유력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마무라 교장의 송덕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는데, 그 연유는 그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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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방촌리 등건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의병 이명걸의 신도비. 임진왜란 때 이명걸(李命杰)이 전공을 세운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다. 이명걸은 1533년생으로 본관은 합천이고, 증자헌대부예조판서(贈資憲大夫禮曹判書)에 추증된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칭 홍의장군이라 부르며 집안의 일꾼과 마을 청년 200여 명을 거느리고 아들 이도량과 함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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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진주 목사인 이상일(李尙逸)[1600~1674]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이상일은 1650~1654년에 걸쳐 진주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보덕(輔德)으로 전임되어 진주를 떠나자, 1654년(효종 5)에 이상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973년에 옮겨와서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 가운데 있다. 비의 제목은 ‘牧使 李尙逸 去思碑(목사 이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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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수일(李守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수일[1554~1632]의 본관은 경주, 호는 은암(隱庵), 시호는 충무이다.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왜군 격퇴에 공을 세우고 1603년 진주성을 증축하는 등 1605년 길주목사로 갈 때까지 진주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수일이 진주병사 재임 중 병사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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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마성리 남마성마을에 있는 이원춘(李元春) 부자의 전공 기념비. 이원춘과 그의 아들 이인민(李仁民)은 임진왜란 때 김시민(金時敏) 장군과 함께 진주성을 방어하고,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활약하다가 순국하였다. 1914년 이원춘 부자를 기념해서 비를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마성리 남마성마을 내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88㎝, 폭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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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인 이인형(李仁亨)의 묘비. 이인형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공부(公夫), 호는 매헌(梅軒)이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하에 있었다. 1468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 하여 북평사, 금산군수를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다. 1498년 무오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하였고, 1506년(중종 1)에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온수리에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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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이중광(李重光)의 묘비. 이중광[1592~1685]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경현(景顯), 호는 행정(杏亭)이다. 청송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학을 가르치고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힘썼으며,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재령이씨 입향조이다. 병자호란 때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이중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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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병사(兵使) 이진경(李眞卿)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 경상우병사 이진경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1702년(숙종 28)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내에 있다. 1973년 진주성 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옮겨졌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60㎝, 폭 71㎝, 두께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었다. 이수의 조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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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에 있는 이천경의 비. 이천경은 본관이 합천이고 호가 일신당(日新堂)이다. 비문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짓고, 후손 이선(李璿)이 썼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오미마을 이천경의 묘 앞에 있다. 얕은 지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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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어옥리에 있는 비. 효자 임병태가 행한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어옥리에 있는 미천초등학교 옆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80㎝, 너비 60㎝, 두께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문은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비의 제목은 ‘효자나주임공병태행적비(孝子羅州林公炳泰行蹟碑)’로 효자 임병태의 행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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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에 있는 진양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진양정씨의 5세손 장춘원(張春源)과 6세손 장진의(張振義)가 중심이 되어 1942년에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 마을회관 옆에 남향으로 있다. 거북받침돌에 높이 141㎝, 폭 53㎝, 두께 23㎝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 중앙에는 태극문양 조각이 있다. 비의 제목은 ‘유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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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에 있는, 절부 진양하씨를 기리는 비. 진양하씨의 열행과 효행을 기리기 위한 효열비로, 진양하씨의 아들 이점호(李点浩)가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리 마진리 마호마을 입구 지방도 변에 동북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00㎝, 폭 45㎝, 두께 16㎝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석 둘레를 시멘트 블록 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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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옥산리에 있는 비. 1694년(숙종 20)에 진주 유림들의 공의로 창건되었던 정강서원의 옛터에 세운 비이다. 정강서원은 창건 후 거유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유생들을 가르쳤고, 1720년에 이르러서는 9인의 학자를 배향 봉사하면서 구현사(九賢祠)라 하였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배향된 학자는 우곡 정온(鄭溫), 수헌 강숙경(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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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기선(鄭基善)의 선정을 기리는 비. 정기선(鄭基善)[1784~1839]은 조선 순조 때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인물이다. 약 2년간의 임기(1827.8.20.~1829.5.7.)를 마치고 떠난 지 2년 후인 1831년(순조 31)에 정기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마을 북서쪽 어귀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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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병마절도사 정기택(鄭騏澤)의 선정을 기리는 비. 병마절도사 정기택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1888년(고종 25)에 고을 사람들이 세웠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옮겨졌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94㎝, 폭 32㎝, 두께 2㎝의 철제(鐵製) 비신(碑身)과 높이 33㎝, 폭 44㎝, 두께 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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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만석의 선정을 기리는 비. 정만석이 1809년 4월 16일부터 1810년 8월까지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할 때 베푼 선정(善政)에 고마움을 느낀 지방민이 1813년(순조 13)에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 마을창고 앞에 남향하여 있는데, 앞 들의 경지정리사업을 할 때 들판에 있던 비를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사각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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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이천리에 있는 남원양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남원양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진성면 유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이천리 도동마을 남쪽 어귀 경전선 철길 건널목 근처에 동북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에 높이 162㎝, 폭 55㎝, 두께 27㎝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의 제목은 “효부정유인남원양씨비(孝婦鄭孺人南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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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산 3-2 정분 묘 앞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정분은 본관이 진주로, 단종 때 우의정에 올라 왕을 보위하다가 수양대군 일파에게 유배당하였다가 처형된 문신이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1396~1454] 묘를 위하여 이곳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으로 인근 주민들이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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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에 있는 송덕비. 정상진이 이웃의 농민 소작인에게 구제를 행한 행적과 은덕을 기념하기 위해 1918년 진주의 농민이 새운 송덕비이다. 귀부를 받침돌로 삼고 있으며, 그 위에 높이 178㎝, 폭 67㎝, 두께 24㎝의 몸돌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귀부는 풍화로 인하여 마멸상태가 심하나, 앞발 및 이목구비는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다. 몸돌에 새겨진 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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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금곡리 구계 부락에 있는 열녀 정운창 처 이씨의 행적을 기념하는 효열비(孝烈碑). 병든 남편을 정성껏 간호한 정운창 처 이씨의 효열을 기념하기 위하여 정운표의 주도 하에 1936년에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금곡리 구계마을 건너편 도로변에 서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15㎝, 폭 37㎝, 두께 19㎝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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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에 있는, 동몽교관 역효당(亦囂堂) 정육의 효행을 기록하여 세운 정려비. 정식명칭은 ‘동몽교관조봉대부역효당정효비(童蒙敎官朝奉大夫亦囂堂旌孝碑)’로, 1892년(고종 29) 고종황제가 효자 정육의 효행을 기려 동몽교관 조봉대부에 증직하고 정려를 내린 내용을 새긴 비이다. 정육의 5세손 정영석이 나라로부터 정려를 받은 은덕을 드러내고자 1942년 임오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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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화광마을에 있는 효자비. 제유해(諸維解)는 어머니 정씨가 생선가시가 목에 걸리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토해 내게 하였고, 돌아간 후에는 생선(도미) 요리를 절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행적이 알려져 나라로부터 포상을 받았고, 제유해의 아들이 이를 기념하게 위해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화광마을의 대로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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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병현(趙秉鉉)의 선정을 기리는 비. 경상도관찰사 조병현이 임기(1834~1836)를 마치고 떠난 뒤 3년 후인 1839년(헌종 5)에 조병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마을 북서쪽 어귀 도로변에 남향으로 있다. 1980년 진주~합천간 도로를 확·포장할 때 원래 있던 자리에서 현재 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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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시영의 선정을 기리는 비. 1899년(고종 36)에 고을 사람들이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에 있다. 시내에 무연고 비석으로 있던 것을 1973년에 진주성 내로 이건(移建)하였다. 비두는 현재 유실되었고, 비신은 너비 49㎝, 두께 16㎝, 높이 172㎝의 백색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비의 제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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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 산 317-3번지에 있는 이정표. 조선시대의 이정표 비석으로 천태산 마구 할머니에 관한 전설과 연관되어 있다. 천태산 마구 할미가 진주성을 쌓기 위해 세 개의 바위를 한 개는 머리에 이고, 한 개는 지팡이로 짚고, 마지막 한 개는 치마에 담아 가져오고 있었다. 도중에 진주성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팡이로 짚고 오던 바위를 마침 있던 자리에 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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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산 103-1번지에 있는 푯돌. 진주시와 사천시의 경계를 표시하여 이정표 역할을 하던 푯돌로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천태산 마귀 할머니가 사천시의 두량리 큰골 방향에서 물레를 하려고 바위 3개를 옮겨 오는데, 1개는 머리에 이고, 1개는 지팡이로 짚고, 1개는 치마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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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하윤린(河允潾)의 신도비. 하윤린의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소개(所開)이다. 고려 문정공(文貞公) 하시원(河恃源)의 아들로, 문충공(文忠公) 하륜(河崙)의 아버지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는 오방재(梧坊齋)의 동쪽에 있다. 비의 형태는 비대(碑臺), 비신(碑身), 그리고 이수(螭首)를 갖추고 있으며, 전체 높이는 305㎝, 비의 높이는 200㎝,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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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정용균(鄭龍均)에게 내린 정려비 및 관련 고문서. 1. 고문서 5점 가. 상서문 : 1879년(고종 16) 선비 208명의 연명으로 정용균의 효행을 관찰사에게 올려 정표(旌表)해 주기를 요청하는 문서이다. 가로 128.5㎝, 세로 57㎝의 저지(楮紙)에 해서(楷書)로 쓰여져 있고, 관찰사의 뎨김[題音]은 초서(草書)로 앞뒤에 쓰여 있다. 정용균은 평소 아침저녁으로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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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최영경(崔永慶)의 사제비(賜祭碑). 수우당(守愚堂) 최영경[1529~1590]은 정여립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옥사한 다음 해인 1591년(선조 24)에 그가 무죄였음이 판명되자, 1594년 선조가 최영경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제문을 내려주었다. 1821년(순조 21) 이 제문을 돌에 새겨 비석을 세웠다. 원래 1821년 당시 남명(南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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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 명암(明庵) 정식[1683~1746]이라는 선비가 진주 사민(士民)들로부터 금품을 모아 논개 의거의 징표로서 1722년(경종 2)에 다듬은 것이다. “비석을 다듬어 놓은 해로부터 18년 뒤인 1740년(영조 16) 가을에 진주 우병사인 남덕하[1588~1742]가 왕의 득명을 받고 이듬해 봄에 비를 세우다”라는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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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장흥리 소재의 사제문이 새겨 있는 비석. 사제문(賜祭文)이란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지내주며 함께 내린 글을 말한다. 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는 1718년(숙종 44) 숙종이 지족당 조지서를 배향한 신당서원에 예조좌랑 이안국을 보내 치제하게 한 사제문을 새긴 비석이다. 진주에서 합천으로 가는 길에 집현면 장흥리를 지나는 도로에서 약 30미터 떨어져 있는 보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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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북동에 있는 진주향교를 이건한 사실을 기록한 사적비. 진주향교가 언제 세워졌는지 분명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987년(고려 성종 6)에 지금의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의 모습으로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수학원(修學院), 학사(學舍), 서재(書齋), 사교당(四敎堂) 등 수차례의 중수 및 중건을 거듭하였는데, 1398년(태조 7)에 이르러 문묘(文廟)를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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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 진주동명고등학교 내에 있는 유흥우와 심낙신의 송덕비. 진주동명고등학교 철비 2례는 19세기 초에 제작된 철제 송덕비들로서 원래 진양호로 통하는 강변도로 개설 때 지하에서 수습되어 진주동명고등학교로 옮겨진 것이다. 진주동명고등학교 철비 2례는 경상 우병영에서 1830년(순조 30)에 이임한 유흥우(柳興禹)와 심낙신(沈樂臣) 두 장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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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는 1604년(선조 37) 이래로는 경상도 우병영, 1895년에는 진주관찰부, 1896년 이래로는 경상남도관찰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령 이하 모든 관리와 일반인은 말에서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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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진주향교 입구에 있는 비. 진주향교 출입자를 통제하기 위해 세운 비로, 여기에 출입하는 자는 누구라도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함을 알린 내용의 비이다.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향교는 고려 말 조선 초에 창건된 향교로, 임진왜란 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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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 앞에 있는 임진왜란 삼장사(三壯士) 기념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판서에 추증된 김성일(金誠一)[1538~1593]과 조종도(趙宗道)[1537~1597], 이조판서에 추증된 이로(李魯)[1544~1598]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삼장사에 대한 기록이 문헌마다 달라 국사편찬위원회의 유권해석과 경상남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1963년에 건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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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인물들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싸우다 순국한 인물들의 충정과 전공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686년(숙종 12)에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99-1번지 촉석(矗石)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비신의 높이는 1.43m이며 너비는 0.92m, 두께는 0.21m이다. 비신은 수성암(水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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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의병장 최강의 공적을 기리는 비.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최강(崔堈)[1559~1614]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로 1975년 후손 최정온(崔正蘊)과 최진모(崔震模)가 건립기금을 모아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뒤벼리 입구에 선학산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남강과 촉석루를 바라보며 서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시멘트 기초 위에 화강암 장대석 기단을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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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운천리에 있는 순흥안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린 효열비(孝烈碑). 효열부 순흥안씨를 기리는 비로 1898년(무술년)에 지방의 유림과 최찬호·최종락 등 집안사람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운천리 운천부락 포실 소류지 길 옆 언덕에 남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27㎝, 폭 50㎝, 두께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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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청곡사를 다녀가면서 지은 시문을 새긴 비. 1533년 이황이 8도 명소를 두루 살피다가 금산 소재 청곡사에 휴양차 다녀가면서 시를 남겼다. 1829년 경에 종사랑 돈녕원 도계 이희영(李禧榮)이 금호지의 동쪽 주변에 돌을 쌓아서 축대(금호대)를 축조하고, 여기에 시비를 세워 기념하였다. 1869년 이희영이 죽은 후에 그 아들 이수용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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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에 있는 하경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경휘의 호는 매헌이며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따라 상주(尙州)에 갔다가 왜병의 칼에 죽게 되자 아버지를 안고 적의 칼을 맞아 같이 죽었다. 일설에 의하면, 적이 먼저 아버지를 치려 하자 하경휘가 양팔을 벌려 아버지를 막고 칼을 막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아버지는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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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하공진의 사적비.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하공진은 자신을 볼모로 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하공진의 이와 같은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69년에 하공진의 후손이 건립하였다. 방형의 대좌와 거북형태의 비좌가 한 돌로 되어 있고 비신 위의 비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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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있는 조선 중기의 선비 하락(河洛)의 신도비. 하락(河洛)[?~1592]은 본관이 진주, 호는 환성재(喚醒齋)이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학행으로 추천받아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아들 하경휘(河鏡輝)와 함께 왜군에게 피살되었다. 1903년 하락을 기리기 위해 신도비를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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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마을에 있는 하세희(河世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세희는 부모가 병이 들자 부모의 대변을 직접 맛보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게 하는 등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고, 상을 당하자 3년 동안 빈소를 지켜 호랑이도 그 효행에 감동했다는 내용을 기록한 비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12㎝,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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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세운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묘비. 운수당 하윤은 평안도 순천군수로 재직하던 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향인 진주 금곡면 검암리 운문 선영에 묻힌 후 그의 공을 기려 묘비를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운문 행우산 기슭의 묘역에 세워져 있다. 이수, 비신, 귀부가 하나의 돌로 된 일체형 비로 전체 높이는 260㎝이다. 비의 재질은 분석이며, 비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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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오도실에 있는 하재원(河載源)의 효행을 기리는 비. 홀어머니가 병이 들자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으로 간호한 진사 하재원(河載源)[1812~1881]의 효행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하재원은 운수당 하윤의 후손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오도실마을의 하씨재각 앞에 위치한다. 주위에는 하재원의 묘비(1913)도 세워져 있는데, 송사(松沙) 기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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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있는 조선 중기 때 문신 하진(河溍)의 묘비. 하진(河溍)[1597~1658]은 본관이 진주, 호가 태계(台溪)이다. 1633년 문과에 올라 집의(執義)를 지냈다. 하진 묘비는 1675년에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위치한 하진의 묘 앞에 있다. 얕은 지대석 위에 비신을 세웠으며, 뚜껑돌은 생략하였다. 전면의 ‘집의태계하공지묘(執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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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한규설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1887년(고종 24년) 병총판 한규설이 등짐장사들의 세금을 감해주는 등 선정을 한 것에 대해 7개 고을 등짐장사들이 협력하여 건립하였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이건(移建)하였다. 비의 제목은 “병총판한공규설혁폐불망비(兵總辦韓公圭卨革弊不忘碑)”로, 비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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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계원리 있는 고려시대 문신 홍의(洪毅)의 신도비. 조선 영조 때 고려시대에 은청광록대부상서우복야(銀靑光祿大夫尙書右僕射)를 지낸 홍의의 업적을 기려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계원리 홍지마을에 있다. 암반을 정밀하게 조각한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얹었다. 비의 제목은 ‘고려은청광록대부상서우복야(高麗銀靑光祿大夫尙書右僕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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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천곡리 대흥마을에 있는 정려. 회산구씨(檜山具氏)는 능성(綾城)의 승지 구연회(具然會)의 딸로 경주김씨 김병규(金炳規)에게 시집간 후, 남편이 중병에 걸리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건강을 되찾게 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1875년(고종 12)에 정려가 내려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천곡리 대흥마을의 입구 도로변에 위치한다. 비의 제목은 「열녀김상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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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에 있는 한국전쟁 때 죽은 우익인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 대평반공유적비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때 진주지역에 있었던 좌우익의 투쟁사례 중 대평면에서 벌어졌던 빨치산과 우익세력 간의 무장투쟁을 말해주는 역사적인 기념비이다. 대평반공유적비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기간 동안 극한적인 이데올로기 투쟁 끝에 희생된 우익인사를 위해 1961년 8월에 세운 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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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진주지구 내 북한군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7월 29일 미 제25사단 ‘칸’ 기동부대가 진주지구에 쳐들어온 북한군 제6사단과 제9사단 병력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1958년(단기 4291년) 7월 10일 육군 제1206 건설공병단에서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지구 전승비에 기록된 비문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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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검암리에 있는 운수당 하윤묘에 세워진 석상 2구. 이 2기의 석상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하윤묘의 하단의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하윤[1452~1500]의 자는 수부, 호는 운수당으로 1414년 생원에 입격하였다. 아버지는 거제 현령을 역임한 하계지(河繼支)이고, 할아버지는 산음 현감을 역임한 하순(河淳)이다. 2기의 석상은 높이 2.3m의 거상으로, 분묘의 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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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 진주동명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귀부와 이수. 귀부(龜趺)의 거북등무늬[龜甲紋]는 오각형을 이루고 있다. 이수(螭首)는 대체로 원통형에 가까우며, 이수의 전·후면에는 구름을 보상화문(寶相花文)의 형태로 꾸며놓았다. 측면에는 원숭이가 용으로 화하여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각출(刻出)시켰다. 진주동명고등학교 석조귀부 및 이수는 원래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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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본동에 있는 비각. 이 건물은 3명의 효자를 기리는 내용을 기록한 판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삼효각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본동에 있는 충의사로 접어드는 삼거리의 개울 건너편 산자락에 위치한다. 이익공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구조이다. 가구구조는 이익공 양식으로 처마의 네모서리에는 원형초석 위에 세워진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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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에 있는, 김진의 처 진양강씨의 정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진양강씨의 남편인 김진이 왜적에게 화를 당하자 왜적 13명을 죽이고 자결한 진양강씨에게 내린 정려로, 1868년(고종 5)에 건립하였다. 맞배지붕의 기와집에 정면과 측면 각각 1칸이다. 좌우와 뒷면은 벽을 설치하고 전면은 목창살벽을 하였다. 내부에는 정려기와 정려판이 걸려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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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비각. 조선 말 가선대부 김상현(金尙鉉)의 정부인 연안차씨(延安車氏)와 그의 아들 전 의관(議官) 김정식(金正植)은 질병 등으로 재난을 당하고 있던 주민들을 구원해 주었다. 뒤에 주민들이 “마을이 재난을 입었을 때 참다운 정성과 물자를 풀어서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모자의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 2기를 각각 1901년과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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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에 있는 비각. 조선 1718년(숙종 44) 9월 12일 숙종이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1454~1504]의 위패를 모신 신당서원을 사액하고 예조좌랑 이안국(李安國)으로 하여금 제를 고하는 사제문비를 세우고 이를 보호할 비각을 세웠다. 조지서는 1474년(성종 5) 과거에 합격한 후 사가 독서하였으며, 연산군 때 창원부사(昌原府使)로 내려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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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무신 김준민(金俊民)[?~1593]의 신도비와 비각. 김준민은 경상도 단성(丹城)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거제현령(巨濟縣令)의 직위에 있다가 관군이 패배하고 흩어지자 의병을 모아 무계현(茂溪縣)에서 왜군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의 부대를 격파했다. 1593년에는 김천일(金千鎰)의 휘하에서 2차 진주성전투에 참가하여 싸우다 전사하였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봉되었고...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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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에 있는, 효자 김종길(金鍾吉)의 효행을 기념하는 비각. 1896년(고종 33) 김종길의 효행을 조정에서 포상하여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남향하여 있다. 1965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로, 지붕은 맞배형이다. 이 정려의 본래 명칭은 “효자증동몽교관조봉대부김공정려(孝子贈童蒙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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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열부인 선산김씨의 정려비. 선산김씨는 이인형(李仁亨)의 자부이며, 생원 이핵(李翮)의 아내이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딸이다. 14세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어머니에게 마시게 하였다. 시집와서는 시부모 지극정성으로 섬겼으며, 남편이 죽자 뒤따라 자결하였다. 나라에서 이 사실을 알고 진주 가좌촌(嘉佐村)에 효열부(孝烈婦) 정문을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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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청주한씨의 열행을 기록한 비와 비각. 한응(韓譍)의 딸 청주한씨의 절개를 기념하기 위해 1736년에 세웠고, 1985년에 중건한 정려이다. 1593년 6월 16일, 왜적이 청주한씨를 끌고 가려하였지만, 끝까지 거부하다 자결하였다. 이에 영조가 정려를 내렸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746-4번지에 있다. 세월이 오래되어 비각이 훼손되자 1985년에 중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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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덕랑(通德郞) 강운(姜沄)의 처인 인천이씨의 열행(烈行)을 기린 비각. 인천이씨(仁川李氏)는 당시 효자이던 좌통례(左通禮) 이교(李郊)의 딸이다. 나이 20세에 강운에게 시집왔는데, 24세에 남편의 상을 당했다. 인천이씨는 그 뒤 평생 동안 매운 음식을 먹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으며, 머리도 빗지 않고 불편한 생활을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곡을 하면서 상을 당하였을 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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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부인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각. 진주강씨는 임진왜란 때의 첨사 김진(金震)의 처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 때 남편이 왜적에게 화를 당하자 칼로 왜적 13명을 죽이고 자결하였다.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정려를 내렸다. 정려문은 1868년(고종 5)에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 744-1번지에 있다. ‘경렬문(景烈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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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의병장 최대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1752년(영조 28) 최대성(崔大晟)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세운 공로를 인정하여 “충신모의장군 증통정대부형조참의어모장군행훈련원정최대성지려(忠信募義將軍 贈通政大夫刑曹參議禦侮將軍行訓練院正崔大晟之閭)”를 내리면서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안간지구대 옆에 동향하여 있다.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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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동산리에 있는 충노 효자 최의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최의남(崔義男)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그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기려 1686년(숙종 12)에 정려를 내렸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동산리 산 94에 있는 용고미(龍顧尾)마을 입구에 남동향으로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시멘트 바닥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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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담리에 있는 허소유의 정려. 허소유(許小(由+己))는 고려 공민왕 14년(1363) 사헌부장령을 지낸 관리였다. 본명은 계도(繼道)이다. 1384년(우왕 10) 모친상을 당하여 애통한 예를 지극한 마음으로 다하면서, 당시 침입한 왜구도 겁내지 않고 평소처럼 집례하는 것을 보고 그 효심에 감동하여 주위 수십 리에 침범을 금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허소유의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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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에 있는 열녀의 기념비. 칠원윤씨 문중 여인의 종부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1870년에 건립되었다. 칠원윤씨 돈암공의 5대손부이고 한석건의 부인인 윤씨가 남편이 병으로 숨을 거두자 자신도 곧 따라 죽으니 영조가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 고전적인 기와정려 형태로 8개의 기둥을 사용하여 건축하였으며, 안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의 입구에 세운 점과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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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천곡리에 있는 비각. 경주김씨 김옥(金鈺)과 그 어머니 능성구씨(陵城具氏)의 열행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겸 비각이다. 김옥이 18세 때 아버지 김병규(金炳規)가 서울 관사에서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모셔 오던 중 혼절하므로 자기 손가락의 피를 내어 소생케 하였고, 그 후 마침내 별세하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극진히 모셨다. 18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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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옥산리에 있는 정려각. 조선시대 이 지방의 선비였던 김장운(金長云) 처 진주강씨와 아들 김명식(金命植)의 절개와 효성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각이다. 김명식은 아버지가 등창이 나 고생하자 어머니와 더불어 정성껏 돌보며 하늘에 기도하여 낫게 하였으며, 또 상을 당하여서는 지극한 효성으로 장사지냈다. 고을 선비들이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리고 정려각 건립을 건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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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천곡리에 있는 비각. 경주김씨 김옥(金鈺)과 그 어머니 능성구씨(陵城具氏)의 열행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겸 비각이다. 김옥이 18세 때 아버지 김병규(金炳規)가 서울 관사에서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모셔오던 중 혼절하므로 자기 손가락의 피를 내어 소생케 하였고, 그 후 마침내 별세하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극진히 모셨다. 1870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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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및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 탑은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스투파(stupa), 또는 팔리어로 투파(thupa)라고 하는데 이를 한역으로 번역하여 탑파라고도 한다. 탑의 기원은 인도에서부터 시작되며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인도의 스투파는 산치대탑에서 알 수 있듯이 복발형의 스투파로, 이후 중국에 전해지면서 여러 층을 겹쳐 쌓아 올라가는 중...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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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개암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2003년도에 실시한 석탑 주위의 문화유적지표조사에서는 아무런 유구나 유물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개암리 석탑이 발견된 개암리 주변에 절터는 남아있지 않으나 현재 위치하는 개암리의 이름을 따서 개암리 석탑이라 불리고 있다. 1977년에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의하면 진주시 일반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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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 관음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화강암 석탑. 이 탑의 또 다른 이름은 운천리석탑으로 원래 진주시 일반성면 운천리에 소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 탑이 원래 소재해 있던 곳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고 현재 관음사 내에 옮겨져 복원되어 있으므로 관음사석탑으로 불린다. 탑신 3매와 지붕돌[옥개석] 1매로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던 것을 2000년에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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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면 상문리의 두방암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석탑의 재료는 푸른빛이 도는 점판암을 사용하였는데, 이와 같은 청석탑(靑石塔)은 고려 초기에 주로 유행하였다. 석탑은 두방암의 이름을 따서 두방암 다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다. 두방암 다층석탑은 본래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법륜사에 건립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법륜사가 소실되어 폐허가 되자 일제강점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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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에 있는 석탑. 현재 진주시 이현동에 위치하고 있어 이현동 삼층석탑이라 불리며, 이현동에 있는 대아고등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어 대아고 삼층석탑이라고도 한다. 경상도 내에서 옮겨온 것이라고만 전할 뿐 정확한 출토지점이나 이전 경위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 316번지[서장대로185번길 14] 대아고등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양 우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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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447-1번지의 옛 절터에 위치한다.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기단부는 상하이중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층 기단은 일부가 파묻혀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다. 다만 중석에는 우주의 괴임이 있다. 상층 기단의 중석은 모두 4매의 판석으로 조성되었다. 중석에는 우주와 탱주 1주가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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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지의 청곡사 대웅전 좌측에 위치한 석탑. 전체적인 양식에 있어서는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일반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단부의 간략화라든지 탑신과 지붕돌[옥개석]이 축소된 점, 그리고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이르러 청곡사가 중건될 당시 아울러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청곡사에 남아 있는 유물 중에는 가장 시대가 앞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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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석탑.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에서 발견되어 탑 옆에 세워놓은 설명판에 '함양구양리 삼층석탑(咸陽九楊里 三層石塔)'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박물관 앞 석탑으로도 불리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라 전할 뿐 유적에 대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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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산 31에 위치한 용암사지 내에 있는 사리탑. 용암사지부도. 부도의 명칭은 명문, 문헌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주인공, 건립연대 등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용암사지 내에 보존되어 있어 용암사지 부도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반성면 우체국에서 용암리로 들어서다 제실 앞쪽에 형성된 곡부를 따라 오르면 용암사지가 보이는데 정씨 제실의 출입문인 삼문을 들어서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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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진주시 중안동에 설치되었던 근대교육기관인 낙육재(樂育齋)의 터. 낙육재는 1721년 경상도 대구의 경상감영 내에 설치된 것이 시초로, 유능한 유생을 선발해 독서와 학술연구 등을 담당한 향교(鄕校)였다. 진주(晋州)의 선비들은 조선의 영조(英祖) 시기부터 낙육재를 자신들의 지역에도 유치할 것을 청원했다. 1896년 경상도가 남도와 북도로 나뉘고, 경상남도 감영이 진주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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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바깥 성벽에 위치했던 동쪽 누각. 동장대는 조선시대 진주성에 설치됐던 4개의 장대 중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동쪽 누각을 말한다. 지금의 중앙사거리와 중소기업은행 진주지점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장대는 진주성 외성벽의 신북문과 동문 사이에 위치해 있던 관계로 가장 치열한 접전 장소가 되었다. 임진왜란 중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왜군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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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계동 38번지[진주대로 1110] 일대에 남아 있는 관아터. 관아의 건립경위나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다. 경상남도 진주시 계동 38번지[진주대로 1110] 일대에 남아 있다. 지금의 한국통신 진주전화국이 있는 일대이다. 이곳은 원래 진주목, 진주군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에 칙령 제98호에 의거 1413년(태종 13) 이래로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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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고려 전기 때의 장군 강민첨의 탄생유적지. 강민첨은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자 강감찬(姜邯贊) 장군을 도와 부원수로서 귀주전투에서 적을 격파, 전승을 거둔 바 있다. 그 공으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주국이 되고, 곧 이어 우산기상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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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에 있는 군영 터. 진주는 통일신라 때 강주(康州)로 불리기 시작하여 수차례 변동을 거치면서 고려 초까지 강주로 불리었고, 이때 지리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군진을 두었다. 『진양지』 고적편에 “강주지(康州池) 위에 옛 군영의 터가 있으니, 세상에 전해 오기를 고려 때 절도사가 이곳에 와서 진을 쳤다.”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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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하대동에 있는 서원 터. 도동서원은 조선 초기 단종 때의 충절 신하였던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苯)·김문기(金文起) 등 4위를 배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었다. 그후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이 서원도 훼철되고 터만 남게 되었다. 도동서원은 단종을 위해 죽은 사화공신 중 1순위인 삼상(三相, 황보인·김종서·정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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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하륜(河崙)[1347~1416]이 태어난 곳. 하륜의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이다. 이방원(李芳遠)을 적극 지지하여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이 되었고,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다. 이후 영의정부사·좌정승·좌의정을 역임하였다. 사후 태종의 묘정(廟庭)에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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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군사를 훈련시키던 유적지. 당시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백의종군을 하면서 초계(草溪)에 있던 권율(權慄) 도원수(都元帥)의 휘하에 있던 중 이곳에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의 임명 교서를 받은 후 이 일대에서 군사들을 훈련시켰다고 전해진다.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진뱀이’라고 부르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717-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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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및 조선시대에 왕명으로 진주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를 묵게 하던 숙소. 진주객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조선 전기 문신 하륜(河崙)의 「봉명루기」에 당대 이전에 두 번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하는 내용으로 보아 진주객사는 고려 말경부터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는 진주시 평안동 47번지 일대이다. 객사는 궐패(闕牌: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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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과 그에 새겨진 글씨. 남강 암각은 ‘일대장강 천추의열(一帶長江 千秋義烈)’이라는 논개(論介)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는 바위벽이다. ‘남강 암각(南江 巖刻)’이라는 명칭은 진주시에 있는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그냥 ‘암각’이라고도 불린다. 창렬사 경내 어제비문을 정비한 다음 처절했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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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위치한 은열사(殷烈祠) 내의 암벽에 새겨진 글씨. 은열사 석각은 강민첨(姜民瞻)[?~1021] 장군의 사당인 은열사의 뒤편 화강암벽에 새겨진 ‘강은열공유지 (姜殷烈公遺址)’라는 글씨로서 1974년 12월 28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자연 암벽으로 이루어진 석각 바위의 전체 크기는 가로 5m 세로 1.4m이다. 암벽의 오른쪽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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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 278번지에 있는 자웅을 상징하는 1쌍의 암석. 이 자웅석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던 성기숭배의 대상물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원래 숫돌은 현 위치에서 북동쪽 300m 지점의 논두렁에 서 있었고, 암돌은 북쪽 500m 지점의 하천 변에 누워 있던 것을 1970년 음력 3월 3일 옮겨 세우고 1973년 명석각(鳴石閣)을 준공하고 그 안에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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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갈곡리에 있는 문인석. 문인석은 묘 앞에 조성한 문신의 모습을 한 석상으로, 이 문인석이 있는 문산 갈천역 앞 안골 부근에는 조선시대의 분묘와 석물이 다수 위치하고 있어 다른 석물들과 함께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갈곡리에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으며, 높이 155㎝, 너비 48.5㎝, 두께 31.5㎝의 규격이다. 머리에는 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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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 월아산 정상에 있는 기우단. 월아산 두 봉우리 중 북쪽 봉우리가 국사봉(해발 471m)인데, 일명 무지등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이곳에 기우단을 설치하고 가뭄 때 관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또한 이곳은 명당터로 소문이 나 세도가들이 암매장하였다가 파헤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산신령이 도와준다고 믿어왔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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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에 있는 성지. 정 안토니오는 본명이 정찬문(鄭燦文)이다. 진주지역의 천주교 선구자로서 안토니오는 그의 영세명이다. 조선 고종 3년(1866) 12월 20일 천주교박해 때 남강 백사장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백사장에 버려진 목 없는 시신만이 수습되어 고향인 사봉면에 몰래 묻혀 그의 묘는 ‘머리 없는 무덤’이라는 뜻에서 무두묘(無頭墓)라고 불렸다.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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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에 있는 중생대 화석지. 진주 유수리의 백악기 화석산지는 진주 남강의 한 물줄기인 가화천 강바닥에서 발굴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495에 분포하고 있다. 유수리 지역은 진주 남강의 지류인 가화천의 하상이다. 하천의 직류를 위한 공사로 형성된 하상으로 가화천의 양안에는 2번 국도[북쪽 안]와 진주~사천간 지방도(남쪽 안)가 위치하고 있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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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에 있는 중생대 화석지. 진주 가진리의 새발자국 및 공룡발자국 화석지는 경남과학교육원 신축 공사장 현장에서 발견된 화석지대로서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물떼새, 공룡, 익룡의 발자국이 혼재되어 있는 유적지이며, 1998년 12월 23일에 천연기념물 제395호로 지정되었다. 화석이 발견된 지역은 원래 해발 55m 정도의 구릉지...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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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진주 이세후 종가는 1836년(헌종 2) 건립된 주택이다. 안채는 상량문에 ‘숭정 기원후 이백삼십년 태세재 병신 삼월 십삼일 병신 신시 입주 동일 신시 상량(崇禎紀元後二百三十年太歲在丙申三月十三日丙申申時入住同日申時上樑)’으로 되어 있어 1836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상량문에 “계축 구월 이십삼일 신시 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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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진주 담산 고택은 19세기 중엽 단파(丹坡) 하계룡(河啓龍)[1851~1932]이 건립한 주택이다. 당호(堂號)는 담산(澹山) 하우식(河祐植)[1875~1943]의 호를 따서 담산 고택으로 하였다. 단목리는 창주(滄洲) 하증(河憎)[1563~1624]이 입향하여 번성한 집성촌이다. 이 가문은 후손들인 습정재공, 생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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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자. 진주 수졸재는 1916년 하세진(河世鎭)이 건립한 정자이다. 하계현(河啓賢)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로 창건되었지만 재실은 불타고 부속 정자인 수졸재만 남게 되었다.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옥류수를 재실 서편 담장을 따라 안으로 끌어들여 맑은 물과 새소리를 완상하며 풍류를 즐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날렵하게 지었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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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는 조선 전기 재실. 진주 오방재는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河崙)[1347~1416]과 아버지 진양 부원군(晉陽府院君) 하윤린(河允潾), 할아버지 진강 부원군(晉康府院君) 하시원(河恃源)을 모신 재실(祭室)이다. 진양 하씨 대종회에서 관리하며, 2008년 2월 5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35호로 지정되었다. 진주...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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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상무사의 진주 분사 사무소 건물. 상무사는 1895년(고종 32) 보부상 등 과거의 상업 조직을 정비하여 새로 설치한 상업 기관이다. 진주 상무사는 진주 인근 17개 지역을 관할하였다. 2011년 6월 2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33호로 지정되었다. 처음 세워진 진주 상무사는 진주 객사 근처 현 진주 중앙 유등 시장 자리에 있었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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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사에 있는 근대의 불교 건축물. 진주 용산리 용산사 대웅전은 온돌방과 누마루가 결합된 독특한 형식의 불교 건축물로 평면 구성과 지붕의 구성 등 조선 시대에는 볼 수 없는 근대기 한옥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011년 6월 2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32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사무소 뒷산 남서쪽 계곡 상류부에 남서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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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재실. 진주 운수당은 2006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01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시 금곡면 금곡로 197-24[검암리 115-1]에 위치한다. 진주 운수당은 운수당(雲水堂) 하륜(河潤)[1452~1500]의 위패를 모신 재실로 세워졌으나 근래 담장 우측으로 사당인 경인사를 짓고 위패는 사당에 모시고 있다. 운수당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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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과 문산읍 소문리 일대에서 발견된 중생대 익룡·새·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 진주 호탄동 익룡·새·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진주 혁신 도시 개발 사업 부지 조성 공사 중 발견되었다. 진주 교육대학교 부설 한국 지질 유산 연구소 조사단의 지질 조사 과정에서 익룡 발자국 화석 540여 개를 비롯해 새 발자국 화석 640여 개, 육식 공룡인 수각류의 발자국 화석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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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조선 후기 건물. 진주 경로당은 조선 후기 양로 시설로 창건되었다. 1934년 일제 강점기에 중건되었다. 2004년 10월 21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59호로 지정되었다. 남강의 좌안이자 진주 시내 동쪽의 독립 구릉 남사면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이름은 ‘보로당(保老堂)’이었다. 이후 ‘진주 옥봉 경로당’으로 개칭하였다가,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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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 건물. 진주시는 1896년(고종 33)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해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로 기능했는데, 1925년 4월 1일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현재의 진주성 안에 경상남도 관찰부 청사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구 진주 배영 초등학교는 진주성 북측에 대사지(大寺池)가 있어 일정 거리를 두고 건축되었다.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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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차량 정비고. 일제 강점기 일본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풍부한 양곡과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하여 경전선과 호남선을 개통하였다. 1923년 경부선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과 호남선의 광주광역시 송정리를 잇는 경전선이 개통되었다. 이후 1925년 진주역과 함께 진주역 차량 정비고가 건립되었다. 원래 이름은 ‘진주역 기관구’였는데, ‘기관구’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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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형평사 활동 기념탑. 형평 운동 기념탑은 조선 시대 최하층 천민이었던 백정들이 신분 해방과 인간 존엄성 실현을 도모한 ‘형평사’의 활동을 기념하여 건립한 탑이다. 1992년 진주 남성당 한약방에서 형평 운동 70주년 기념 사업회가 구성되었고, 형평사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1993년 4월 24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함께 국제 학술 대회를 개...